"대통령 할 적엔 욕하더니 놀고 있으니까 좋다고들 하네요."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던진 이 농담이 그의 서거 이후 진지한 물음을 던지게 하는 현실이 됐다. 서거 닷새째인 27일 봉하마을 빈소에만 100만 명의 추모객이 찾아왔고, 전국적으론 수백만 명이 분향소 앞에서 장사진을 쳤다. 추모 열기는 세대를 초월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고인에게 '노(盧)간지(감(感)의 일본어 발음으로 '멋있다', '폼난다'는 뜻의 속어)'라는 애칭을 붙이고 그를 추앙하는 게시물을 쏟아내고 있다. '아마추어리즘', '분열의 정치'라는 혹평 속에 지지율이 15%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 재직 당시엔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다.
■ 추모 열기 왜?
추모 열기를 지피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극적인 삶이다.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고졸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ㆍ노동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정치적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 권좌에 올랐던 삶의 행로가 다시금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42)씨는 "노 전 대통령처럼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생애를 가진 지도자가 또 나타날까 싶다"고 안타까워 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한국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자)에서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것만으로도 고인이 지닌 상징성은 크다"고 말했다.
"늘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대통령이었다"(여대생 유모씨)는 반응처럼 노 전 대통령의 탈 권위적 모습도 추모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그의 서민적 면모가 변호사나 정치인 시절 독재와 불의에 맞섰던 투사적 행보와 맞물려 인간적 매력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의 반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엽 서울대 교수는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현실의 슬픔과 고통을 정화하고 과거를 긍정적으로 추억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반사적으로 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세대마다 다른 감정
추모의 정은 한가지지만, 감정의 결은 세대마다 차이가 느껴진다. 200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진 세대, 특히 386세대는 그의 서거를 '우리 시대의 종언'으로 받아들이며 깊은 상실감을 표하고 있다.
전모(39)씨는 "40대 이상 세대에 있어서 노무현은 1988년 5공 청문회로 기억되는 민주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고 말했다. 윤찬영(46)씨는 "우리 세대에게 노 전 대통령은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정치적 상실감이 향후 반(反)정부 운동의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권용선 수유너머 연구원은 "386세대 중 재임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들에게도 그의 서거는 '가치와 정의를 중시했던 시대의 종언'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20대 중반 이하 세대에게 노 전 대통령은 일종의 '이상적 캐릭터'로 수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종합적 평가보다는 생전 사진과 발언 등을 편집해 긍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는 인터넷 '노간지 신드롬'이 대표적 사례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나 카리스마에 기반했던 예전 대통령들과 달리 '자발적 대중동원'을 통해 정상에 오른 인물"이라며 "비극적 서거로 객관적 평가에 앞서 신화적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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