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담배 있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담배 있나?"

입력
2009.05.28 00:51
0 0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뉴스를 쭉 접하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대목이 하나 있었다. 함께 부엉이바위에 올랐던 경호관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지기 직전 "담배 있나"라고 물었다는 진술의 진위였다. 그것까지 지어낸 이야기라는 소식이 있었을 때 허탈감은 몹시 컸다. 다행히 "담배 있나" "가져올까요" "됐다"라는 대화가 있었음이 확인됐고, 그 소식은 묘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심경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단서로 여겼기 때문이다. 금기처럼 돼있는 담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노 전 대통령에게 담배는 소통과 공유의 도구였던 듯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인 2002년 12월 20일의 '명륜동 담배 파티'는 유명한 일화다. 선거에 헌신했던 386측근들을 명륜동 자택으로 초대해 저녁을 함께 한 뒤 모두 한 방으로 모았다. 담뱃갑을 꺼내 일일이 한 개비씩 나눠주며 직접 불까지 붙여 주었다. 강요하다시피 맞담배를 권하며 "달라지지 말고 예전처럼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도 손님이든 기자든 편하게 담배를 빼내 주고, 또 "담배 있나?"하고 물었다. 우리사회에서 아직은 어려운 맞담배 대화를 즐겼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간 뒤 새로 얻은 별명이 '노간지'다. 젊은 네티즌들은 다 알고 있다는데 나만 몰랐다. 일본어인 간지(感じ)가 우리말로 '느낌'이라는 의미니, 그들의 표현인 '필(feel)이 꽂힌다' 정도의 개념인 듯하다. 그들은 '간지 나다'는 말도 만들어 '멋있고 폼이 난다'는 뜻으로 쓰는 모양이다. '멋있고 폼 나는 노짱'을 줄여 '노간지'로 불렀다. 봉하마을에서 점퍼 차림으로 동네슈퍼 철제의자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퍼나르며 붙인 별명이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감(感)과 feel'이 닿았다.

▦담배의 해로움을 잘 알기에 여러 번 금연도 했지만 봉하마을로 간 뒤엔 그것이 쉽지 않았나 보다. 소통과 공유의 윤활유였던 것이 심정을 삭이며 생각을 가다듬는 도구로 애용됐고, 그 모습이 '노간지'라는 별명과 함께 퍼져나갔다. 서울 대검청사로 출발하기 직전 사저에서 줄담배를 피웠고, 검찰조사를 받으면서도 잠시 담배를 물었다고 했다. 새벽 부엉이바위 위에서 담배 한 개비 피우지 못한 사실이 안타깝지만 "담배 있나?"라는 말까지 조작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흡연을 예찬할 수야 없으나 담배 한 대 비손하는 마음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