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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존엄사 법제화까지 남은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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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존엄사 법제화까지 남은 숙제들

입력
2009.05.2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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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환자의 의사를 대변해 보호자가 요구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소위 '존엄사' 법제화 시작의 신호탄을 쏘았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첨단의료장치를 동원해 환자의 법적인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의사도 보호자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도가 뚫리고 인공호흡기가 씌워진 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환자 본인의 권리는 실종되었다.

아직도 의료현장에서는 많은 중병 환자들이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의 정확한 질병상태조차 모른 채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 이후의 의학적 결정은 의사의 기술적 판단과 보호자의 동의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법원은 생의 마지막 모습을 환자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법제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첫째, 용어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존엄사, 자연사, 안락사 등의 표현이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다. 의사의 적극적인 생명 중단 개입행위와 의사가 환자의 자살을 돕는 행위는 안락사로 정의되어야 한다.

말기 환자가 임종기간만 늘릴 위험이 있는 연명치료를 거부하여 의사가 이를 수용하는 경우는 존엄사(혹은 자연사)로 표현토록 제안하고자 한다.

둘째, 대상 질환을 명확히 규정하여야 한다. 회생가능성 판단에 대한 논란이 가장 적은 분야는 말기 암환자다. 그 다음으로 말기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말기 만성질환자 순으로 정리된다. 식물인간의 경우는 대단히 다양한 의학적 상황을 포괄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많으므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존엄사 결정에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존엄사를 반대하는 분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의료보험의 적용범위를 늘려가고 있지만 국민들이 의료비용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소생 가망성이 있는 환자를 보호자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아예 병원으로 모시고 오지 않는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연명치료와 관련된 임종문제가 환자, 가족, 의료인 등 당사자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고,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임에 공감대를 이루었다는 점은 큰 성과다.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끝없이 계속되겠지만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법제화를 추진하는 일은 의료인이나 환자 보호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우리 각자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인류의 건강과 장수를 목표로 발전해온 의학의 발전이 인간 개인의 죽음의 과정까지 개입하여 통제하려는 것에 대항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은 현대의 아이러니다.

'존엄사'에 대한 많은 오해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대법원에서 환자의 평소 가치관을 인정하여 연명장치 제거를 법적으로 허락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과학 문명의 발달로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을 묶어놓고 있는 과거의 법제도에서 첫 번째 매듭을 풀어준 일이 될 것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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