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치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거대한 진공상태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충격적 죽음이 몰고 온 정치권의 무장해제가 언제까지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다시 도래할 정치의 계절에 여야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26일 청와대가 추진한 여야 대표회담이 무산된 것은 조문 정국이 끝나도 '대화의 정치'의 복원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북한의 2차 핵실험 대응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3당 대표에게 회동을 제의했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앞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튿날인 지난달 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여야 3당 대표들과 회동을 가진 것과 비교된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론 "노 전 대통령 장례 기간에 '상주'인 정세균 대표가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속내에는 정부가 민주당이 이미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 발표를 기정사실화해 놓고 모양 갖추기 차원에서 야당과 만나려 한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오늘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자는 제안이 왔지만 이미 아침에 PSI 전면참여 발표를 예고한 상태였다"며 "우리 보고 들러리나 서라는 얘기냐"고 말했다.
경찰의 덕수궁 대한문 앞 민간분향소 통제 문제는 또 다른 불씨다. 정부는 불법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만큼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을 앞세워 비판의 목소리를 틀어막으려는 정부 여당의 공안통치 발상이 바뀌지 않은 탓으로 해석한다.
민주당은 정치현안 발언을 일절 삼가고 있지만 경찰의 분향소통제 문제 만큼은 연일 성명을 내고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물론 여야가 당분간은 냉각기를 가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여당 내에서도 "악화된 여론을 무시하고 6월 국회에서 쟁점법안을 밀어붙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화의 정치로 이어지길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당장 조문 정국에 가려져 있을 뿐 정부 여당의 일방 독주식 국정운영에 변화가 없다는 야당의 불신이 상당하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 "MB정부의 국정운영 기조 변화와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사과가 없으면 대화는 없다"는 강경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중요 변수다. 당 관계자는 "MB정부의 독선이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란 비극을 불렀다"며 "대화 정치는 당분간 실종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요구는 보수정권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역린과 같다. 정국 전망이 비관적이라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릴 수밖에 없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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