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의 국가 경계를 넘어선 문화 생산ㆍ소비 구조를 들여다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는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다뤄져 온 '동아시아 문화' 담론을 사회ㆍ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학술대회 '동아시아에서의 문화생산: 떠오르는 문화주체들'을 29일 개최한다.
한국과 일본, 대만의 학자들이 참여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문화 생산 주체, 능동성을 띠는 문화 소비자의 역할 등을 논의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류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문화변동의 초국가적ㆍ탈국가적(transnational) 특성을 거시적 관점에서 살핀다.
■ 청년의 실종, 청소년의 커밍아웃
박자영 협성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출판의 주변부 장르에서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한ㆍ중 청소년문학을 주목한다. 그는 2000년대 한국 문학의 특징을 "대학 시절의 '묵음화'와 '백수ㆍ칙릿 소설'의 범람"으로 규정한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은 더 이상 청춘 혹은 순수를 상징하는 특권적 장소가 아니다.
20대가 쓰는 문학은 백수 아니면 명품을 구매하는 사무직 여성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이 '찌질함'과 '럭셔리함'이라는 양 극단을 오가며 생활을 발견"하는 현실을 "경쟁 아니면 낙오의 현실을 반영하는 판타지"라고 분석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대학생이 사라진 청년문학의 빈 자리를 청소년문학이 채우고 있는데, 공모전 위주의 청소년문학 출판시스템은 기성세대가 청소년문학의 생산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현상을 낳았다.
그는 "어른이 상상하는 청소년기와 사춘기는 결국 고전적인 성장소설의 외양을 띨 수밖에 없다"며 "청년이 떠난 자리를 성인들의 텅 빈 청소년 서사가 채우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한국문학의 현재를 "하위문화와 오타쿠로 상징되는 청소년문화가 주류 문화와 조우하는 순간"이라고 규정한다.
중국에서의 청소년문학 부상은 한국과는 대조적인데, 박 교수는 "이들은 오롯이 청소년에 초점을 맞추고 청소년의 손에 의해 쓰여지고 있다"고 파악한다. 중국 청소년문학은 록음악과 장이머우 등 5세대 영화감독으로 대표되는 '80세대'와 구분되는데, 이 '포스트 80세대'는 비사회적인 환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환성> <삼중문> 등 중국의 대표적 청소년소설을 예로 들며 "현실을 서사하기보다 짧은 청소년기를 영원히 노래한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삼중문> 환성>
■ 가부장제 재배치와 한류 드라마
야마시다 영애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한류 드라마의 인기를 가부장 문화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그는 '겨울연가'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가부장적 관점이 일본의 가부장적 관점과 만나는 접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 드라마에서 준상(배용준)이라는 캐릭터가 사생아로 등장하는데, 준상의 어머니는 아들을 뺏길 수 있다는 이유로 생부의 존재를 감춘다. 그러나 번역되는 과정에서 대사뿐 아니라 가부장제 관념에 갇힌 준상 어머니의 상황까지 일본의 가부장적 관념에 맞게 탈바꿈했다는 것이 야마시다 교수의 지적이다.
호칭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원래 연령에 따른 존칭법이 사용되지만, 일본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젠더에 따른 존칭의 변화를 거친다. 어머니가 '여성스러운 말'을 사용하고 아들이 반말투로 얘기한다든지, '열린 생각을 가진 남편'이 '관대한 주인'으로 번역되는 식이다.
야마시다 교수는 "대중매체에 대해서도 여성주의적 비평이 시급하다"며 "여성주의도 트랜스내셔널 네트워킹이 필요하며, 한류 붐을 그 가능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새로운 파워 콘텐츠, 웹툰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 기반 만화인 웹툰의 인기에 내포된 문화 코드를 해석한다. 웹툰의 인기는 일반적으로 출판만화 시장의 퇴조 및 애니메이션, 게임산업 정체와 맞물려 설명된다. 그러나 김 교수는 개인의 소소한 감정과 일상의 웃음 코드로 상징되는 웹툰의 성격에서 2000년대 사회의 분위기를 읽는다.
김 교수는 "웹툰은 짤막한 길이에 실수담이나 굴욕담을 위주로 삼은 유머 코드를 담고 있다"며 "이는 최근의 루저 문화와 맥이 닿고 있다"고 분석한다. "청년 실업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삶과 정서를 보여주는 일련의 문화 텍스트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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