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유동성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거의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과잉 유동성 논란이 이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인 셈이다. 때문에 중소 상공인들은 상당 기간 유동성 지원 및 저금리 정책을 지속해야 하며, 은행 대출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26일 한국일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국내 500개 중소기업(300인 미만)을 대상으로 자금 사정 등을 조사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과잉유동성 논란은 남의 나라 얘기
6개월 미만의 단기부동자금이 810조원을 넘어서면서 시중에선 유동성 과잉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일부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회사채와 주식 등 직접금융 창구가 개선되면서 자금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중소기업 사정은 달라진 게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 자금 사정이 올해 1분기에 비해 나아졌느냐'는 물음에 전체의 59.4%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의 유동성 확대 및 저금리 정책이 중소 상공인들의 피부에는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소 호전'(20.6%)이라는 응답도 '다소 악화'(16.8%)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매우 호전됐다'는 답은 0.4%에 그쳤다.
이처럼 자금 사정이 나아지지 못한 이유에 대해 63.0%가 '자금시장이 여전히 경색됐다'고 지적했다. '은행 대출 어려움'이라는 응답도 22.8%에 달했다. 비록 금리가 낮아졌지만, 중소기업들에겐 은행 문턱이 여전히 높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매출 하락에 따른 기업신용도 악화'(10.4%), '신보ㆍ기보 보증 어려움'(3.8%) 등이 뒤를 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 시점에서 필요한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절반 가까이(43.2%)가 '저금리 기조와 유동성 지원 지속'이라고 답했고, '재정확대 정책 지속이 필요하다'(15.2%)는 답도 적지 않았다. 오랜 가뭄에서 벗어나려면 갈라진 논에 물을 흠뻑 대야 하듯, 앞으로도 상당 기간 통화팽창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게 중소 상공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경기회복 아직 멀었다
향후 경기 및 실적 전망도 비관적이다. 현 경기상황 분석에 대해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응답(51.2%)이 가장 많았고, 이어 '경기저점 통과 중'(29.0%), '경기회복세 전환'(13.0%)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6.6%)는 답도 일부 있었다. 반면 '경기회복 본격화'에 동의하는 답(0.2%)은 거의 없었다.
경기회복 시점에 대해선 37.6%가 '내년 상반기'라고 답했고, 이어 '내년 하반기'(25.8%)와 '내년 하반기 이후'(12.0%) 순으로 꼽아 전반적으로 경기회복이 더딜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올 하반기'라는 응답은 15.7%에 그쳤다. 연말 원ㆍ달러 환율은 지금과 비슷한 평균 1,243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이현석 상의 경제조사본부장(전무)은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서민경제 회복에 가장 중요한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유동성 공급의 부작용보다는 경기회복을 먼저 생각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규제 완화·비정규직 문제 등 다각적 지원을"
"세계 경기가 아직 회복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만큼, 우리나라 경기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부 부양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손경식(70ㆍ사진) 대한상공회의소 소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라 경제의 허리인 중소기업들이 일어서기 위해서는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경기 전망과 관련, "공장가동률과 생산, 건설투자 등 일부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업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도가 세지 못하다"면서 "조금 더 회복 신호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일부 경기지표가 회복 신호를 보내고 있고 시중 자금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설문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여전한 만큼 정부가 면밀하게 중소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중소기업들이 강력 요청하고 있는 '유동성 확대 및 저금리 정책기조 유지'뿐만 아니라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투자세액공제제도 확대 ▦기업활동 진작을 위한 규제완화 지속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들의 자체적인 분발도 촉구했다. 손 회장은 "연구ㆍ개발(R&D) 투자 확대를 위한 기술력 확보, 대기업과의 상호협력 강화, 신시장 개척 및 고유 제품개발 등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스로 노력한 뒤, 비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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