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는 일은 대개 연륜이 쌓이면서 숙련도가 높아지는 법이다. 그런데 나이와 전혀 상관없는 직종이 세 가지 있다. 바둑 또는 체스. 수학. 음악이 그것이다. 10대 중반부터 정상권에 진입하기 시작한 바둑천재 이창호, 12세에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발견한 천재 수학자 파스칼, 5세부터 작곡을 시작한 음악 신동 모차르트 등을 떠올리면 된다. 이 세 분야는 나이가 오히려 성취에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생 경험 쌓여야 쉽게 이해
그러나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은 정반대다. 성년이 된 뒤라야 더욱 적절한 교육이 행해질 수 있다. 인생 경험을 쌓아야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리는 19세기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인문학에서 대단히 조숙했다. 탁월한 공리주의 학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아들의 교육을 직접 맡았다.
밀의 <자서전> 에 의하면 그는 3세 때 그리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학자인 아버지와 한 방에서, 그것도 그가 글을 쓰고 있는 책상 한편에 앉아 그리스어를 익혔다. 밀은 에드워드 기번, 데이비드 흄 같은 18세기 역사가와 철학자의 저서를 읽으면서 아버지로부터 문명 정치 도덕 학문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유치원 다닐 나이의 꼬마 앞에서 역사와 철학을 강의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자서전>
8세 때 밀은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다. 밀이 8세에서 12세까지 읽은 책은, 라틴어로는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키케로 등이 있었고, 그리스어로는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투키디데스 등이 있었다. 그리스 로마의 주요 고전을 망라했다. 읽기만 한 것이 아니다. 비록 습작이긴 했지만 밀은 어린 나이에 여러 권의 역사서를 썼다.
아버지는 밀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모든 교육을 직접 맡았다. 이를테면 '홈 스쿨링'을 한 셈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경계한 것은 '자만심'이었다. 그는 칭찬하는 말이 밀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였고, 밀이 자신과 남을 비교해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래서 밀은 그가 얻은 학식이 그 나이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14세 때 처음으로 장기간 집을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는 밀이 또래의 청소년들이 알지 못하는 지식을 많이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남보다 많이 아는 것은 잘난 탓이라기보다는 운이 좋아서 가르칠 능력이 있고 또 수고와 시간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를 둔 덕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밀은 겸손했다. 그는 자신이 타고난 재주에서 평균 이하에 불과했으며, 그 정도의 학업은 웬만한 능력과 건강을 가진 소년소녀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천재의 겸손'이 오히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하지만 밀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예외'임을 잊지 말자. 대다수의 보통 사람은 삶의 경험과 더불어 역사 문학 철학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아지는 법이다.
배우는 '보통사람' 늘어
서울시가 노숙자를 위해 마련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대학 캠퍼스는 물론 구청 회의실 교회 사찰 등에서도 동서양 고전강의가 열리고 철학적 문답이 오간다. 최고경영자와 주부 등 보통 사람들이 인문학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노령 인구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생의 연륜에 인문학적 성찰까지 덧붙여진다면 노후는 얼마나 빛날 것인가. '백발=지혜'가 된다. 인문학 바람이 노년의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시민사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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