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을 때, 특히 현직에 있었을 때, 경제쪽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들만 따로 지지도 조사를 했다면, 아마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평균 지지율보다 훨씬 낮게 나왔을 것이다.
한 기업인이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사실 기업하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돈 문제로 정치인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일은 없어졌잖아요."
이건 그를 지지하는 기업인이든, 반대하는 기업인이든 공통된 의견이다. 이전까지 기업들이 느끼는 정치자금 압박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오죽하면 선거를 앞두고 해외로 나가는 기업인까지 있었을까. 적어도 참여정부에선 이런 일이 없어졌으니, 기업인들로선 감사해야 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경제계에선 왜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을까. 그 기업인도 똑 부러지게는 대답하지는 못했다. "딱히 이거다 할 것은 없어요. 그냥 반기업적 태도랄까, 아님 언행이랄까 뭐 그런 것들… ."
사실 노 전 대통령이 친기업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기업적인 것도 별로 없었다. 규제를 양산했던 것도 아니고, 노조를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았다. '분배' 얘기를 좀 했지만, 기업에 실질적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일부 대기업 관련 제한조치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과거 정권에서도 얼마든지 있었던 일. 더구나 한미 FTA까지 추진했던 그를 '기업에 적대적이었다'고 평하는 것은 별로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그럼 '노무현 기피증'의 실체는 뭘까. 경제계는 대체로 기득권에 가까운 곳이다. 사회적으론 주류이고, 이념적으론 보수다. 아마도 이들로선 노 전 대통령의 비주류적 태생과 삶의 궤적, 그리고 기득권 저항적인 성향 모두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논리적 반대보다는 정서적 거부감 같은 것이랄까.
아직은 충격이 가시질 않고, 좀 더 고인을 애도해야 할 시점에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던져 준 무거운 과제 때문이다. 그를 냉정하게 조명해야 할 의무. 우리 사회가 그에게 갚아야 할 빚이라면 빚이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예의라면 예의다.
불행하게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딱 두 가지뿐이었다. 미화 아니면 폄하. 대통령 당선 이래 '살아 있는 노무현'에 대한 평가에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나 정파적, 이념적 잣대가 가해졌다. 친노냐 반노냐, 진보냐 보수냐, 혹은 좌파냐 우파냐.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그를 칭찬한다고 해서 '노사모냐'고 눈흘김을 받지 않아도 되고, 그를 비판한다고 해서 '보수꼴통'이라고 손가락질받지 않아도 된다. 대통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또 자연인으로서, 정책은 정책대로, 언행은 언행대로, 심지어 박연차씨 부분도 있는 그대로 재조명하자는 얘기다.
혹자는 평가를 역사의 몫으로 넘기자고 한다. 자칫 또다시 반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끊임없이 평가하고 또 재평가하는 과정 그게 곧 역사인데 평가를 역사에 맡기자는 것은 그저 '노무현'에게서 벗어나고 도망치겠다는 얘기밖에는 안 된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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