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 속에 칸은 노장의 손을 들어줬다.
제62회 칸 국제영화제가 오스트리아의 노장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화이트 리본'에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며 24일 오후(현지시간) 12일간의 축제의 막을 내렸다. 올해 칸영화제는 세계적 거장들이 '별들의 전쟁'을 펼쳤지만 정작 "수작은 많지 않고 엉뚱한 작품들에 상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 노장 감독의 업적에 경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하네케 감독의 '화이트 리본'은 제1차 세계대전 전야의 독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파시즘이 학생과 교사 등에 미친 영향을 들여다본다. 거친 흑백 화면이 지난 시대의 어둠을 투사한다.
하네케 감독은 사회와 인간 내부에 잠재돼 있는 폭력성의 근원을 파헤쳐 온 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2001년 '피아니스트'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2005년 '히든'으로 감독상을 각각 받은 명장이다.
'화이트 리본'은 현지 언론의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67세 노장의 공로와 연륜이 심사에 더 크게 작용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 배우로 '피아니스트'의 주연이었던 심사위원장 이사벨 위페르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영화제 초반부터 줄곧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혔던 자크 오디야드 감독의 프랑스 영화 '프라핏'은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에 만족해야 했다.
프랑스 일간지 파리지앵의 알랭 그라세 기자는 "올해 최고의 영화는 '프라핏'이지만 하네케에게 일생의 업적을 감안해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우주연상은 1990년대 청춘스타 출신의 프랑스 배우 샤를롯 갱스부르에게 돌아갔다. 갱스부르는 올해 칸에서 가장 문제적인 영화로 꼽힌 '안티크라이스트'(감독 라스 폰 트리에)에서 아이를 잃고 미쳐가는 엄마 역을 연기했다. 남우주연상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전쟁영화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에 출연한 독일 배우 크리스토프 발츠가 차지했다.
■ 아시아 영화의 반란
토막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키나타이'의 필리핀 감독 브릴란테 멘도사 등 아시아 감독들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점은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멘도사는 감독상을, 동성애를 그린 '스프링 피버'의 중국 감독 로예는 각본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심사위원상) 수상까지 포함하면 아시아 영화의 약진이 돋보인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멘도사와 로예의 수상은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독립영화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칸영화제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서구 언론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미국 연예주간지 버라이어티는 "아시아 영화 세 편의 수상은 취재진의 커다란 야유를 이끌어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박 감독이 '나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에는 멀었나 보다'라고 말하자 일부 기자들이 '맞아'라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특히 멘도사의 수상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키나타이'는 한 심사위원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혹평했던 영화. 기자시사회에서도 박수를 전혀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창동 감독 등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네 쪽으로 쪼개져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는 뒷말이 나왔다. "최악의 심사 경험" "이사벨 위페르는 파시스트"라는 심사위원들의 불만도 흘러나왔다.
반면 페드로 알모도바르('브로큰 엠브레이시스')와 켄 로치('룩킹 포 에릭'), 리안('테이킹 우드스톡'), 제인 캠피온('브라이트 스타') 등 거장들이 언론의 호평에 불구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 점도 이번 칸영화제의 이변이다.
한편 87세의 노장인 프랑스의 알랭 레네 감독은 '와일드 그래스'로 평생공로상을 받았으며 호주의 워익 쏜튼 감독은 '삼손과 데릴라'로 신인 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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