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린 화가 - 르누아르' 전 개막을 닷새 앞둔 23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커미셔너 서순주씨의 지시에 따라 거대한 나무상자가 2층 전시실 가운데로 옮겨졌다. 강력한 다중 구조로 되어있는 이 상자는 미술품 전용 포장 박스인 크레이트(crate). 이동 및 기후 변화로 인한 작품의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해 작품에 따라 맞춤 제작되는데, 개당 가격이 수백만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이 드릴로 못을 제거한 뒤 크레이트를 열고, 특수 처리된 스티로폼 덮개 세 겹을 걷어내자 흰 중성 종이에 쌓인 작품의 형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유화 '시골무도회'다.
■ '시골무도회'의 미소 번져
조심스럽게 종이를 벗기고 바닥을 향해 있던 작품을 뒤집는 순간, 보는 이들의 입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발그레한 볼을 한 르누아르의 여인이 보내는 화사한 미소가 전시장 가득 번져나갔다. 다른 작업을 하던 이들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시골무도회' 앞에 모여들었다.
감탄의 순간도 잠시, '시골무도회'를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의 미술품 복원사가 머리에 확대경을 쓰고 작품 확인에 들어갔다. 프랑스에서 포장 직전 작품의 상태를 기록한 '컨디션 리포트'와 한국으로 옮겨진 작품의 상태를 비교하는 작업이다.
복원사는 조명을 비추며 작품의 표면은 물론, 액자의 뒷면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붓으로 액자 사이의 먼지까지 섬세하게 털어냈다.
10여분 간의 확인 작업이 끝나고 복원사가 컨디션 리포트에 사인을 하자 작품은 마침내 전시될 위치로 옮겨졌다. 전시장 벽면 150㎝ 높이에 작품의 중심을 맞추고, 레이저를 쏘아 수평을 표시하는 등 작품 한 점을 거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서순주씨는 "전시 과정에서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 작품 관리"라면서 "일단 안전하게 모든 작품들이 도착해서 한 시름 놓았다"고 말했다.
■ 보험가 1조원, 각국 호송관 15명
르누아르의 대표적 유화 등 모두 118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보험가액만 1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전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운송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할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들었다.
몇 곳의 특정 미술관 소장품을 한꺼번에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르누아르의 걸작들을 모으기 위해 유럽, 미국, 일본 등 40여곳의 미술관과 개인 소장자에게서 작품을 빌렸기 때문이다. 통관 업무 등 작품 운송을 담당하기 위해 각국에서 입국한 호송관의 숫자만 15명이다.
118점의 작품은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에 걸쳐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일본, 뉴욕, 워싱턴 등지에서 총 8편의 비행기로 나뉘어 입국했다. 공항에 도착한 작품들은 미술품을 전문으로 운송하는 무진동 차량에 실린 채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운송차량은 일정 속도를 유지해야 작품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
작품이 미술관에 도착했다고 해서 바로 개봉되는 것은 아니다. 기후 적응을 위해 최소 24시간 이상 포장 상태로 전시실에 두어야 한다. 큐레이터 김진영씨는 "오래된 액자의 경우 미세한 틈이 생기는 등 손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작품과 함께 입국한 복원사들이 그 자리에서 복원을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ㆍ최대의 르누아르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이렇게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거의 마무리했다. 서울시립미술관 2, 3층 전시실에 모든 작품이 디스플레이됐으며, 조명 설치와 전시장 벽면에 안내문을 새기는 레터링 등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이다.
27일 오후 5시 30분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리며, 28일 오전 10시부터 드디어 한국 관객을 만난다. 전시 문의 1577-8968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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