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맞은 우리사회는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에 휩싸여있다. 당장 국민들의 마음을 한 데 모으고 있는 추모의 열기가 가라앉은 뒤 헌정사 초유의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충격의 여파가 한국사회 전반에 어떤, 얼마만큼의 변화를 불러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성찰과 화합의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전문가들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배경과 파급력을 놓고 현격한 입장차를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유서 내용 대로 화해와 용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 "정치 보복", "개인적 좌절"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질적 정치 보복'부터 '개인의 극단적 선택'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이미 역사적 인물이 된 노 전 대통령을 여전히 현실 정치인인양 가혹하게 다뤘다"며 "역사적 인물을 균형 있게 평가하지 않고 비난하기 급급한 한국적 문화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임동욱 충주대 교수는 "현 정부가 고인의 퇴임 이후 행보에 일일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과도하게 경계했다"고 진단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애초 정치적 동기로 수사에 들어간 것 같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 없이 '고급 시계를 받았다가 논두렁에 버렸다'는 등의 얘기를 흘려 파렴치범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는 "정치 보복설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감정적으로 격앙된 이들의 반응일 뿐 실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유서 등 정황을 살피더라도 개인적 좌절과 우울 때문에 생을 마감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검찰의 의도된 수사라기보단 박연차 로비 수사가 우발적으로 노 전 대통령까지 번진 것"이라며 "초반에 '나는 몰랐다'고 변호하는 바람에 고인이 궁지에 몰린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 '제2의 촛불'로 이어질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반정부 정서나 여러 사회적 이슈와 결합해 지난해 촛불시위에 맞먹는 대규모 군중 집회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치적 의미에서라기보다 순수한 애도의 마음으로 추모에 임하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분석 때문이다.
최훈석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안과 지난해 촛불시위를 촉발한 '광우병 파동'은 많은 차이가 있다"며 "당시엔 잘못된 정부 정책으로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가 됐다는 공분이 있었지만, 서거는 본질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신상 문제고 피해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적다"고 진단했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윤평중 교수는 "집단행동은 특정세력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주체 못할 분노와 동정에서 비롯된다"며 "비극적으로 죽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깊은 동정심이 정부를 겨냥할 경우 지난해 촛불시위를 능가할 만한 폭발력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장 기간엔 추모에 동참하되 장례가 끝나는 29일 이후 본격적으로 거리 집회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용산범대위 관계자는 "영결식 다음날인 30일 용산 참사, 고 박종태 열사 등을 현안으로 서울 도심에서 범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시국회에서 미디어관련법이 다뤄지는 다음달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시국모임(2일), 100만 촛불 계승 대회(10일) 등이 계획돼 있다.
■ "盧의 유언은 성찰과 화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파장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전문가들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진정한 메시지는 화해"라는 점에 동의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보면 자신의 죽음이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되길 바라지는 않은 것 같다"며 "보수와 진보 진영 서로가 진중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유연한 대응에 대한 주문도 많았다. 임현진 교수는 "현 정부가 소통과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여론에는 신경도 관심도 없다"면서 민심의 추이를 지켜볼 것을 주문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촛불집회 이후 반대파에게 대화와 타협이 아닌 형사처벌로 대응하는 경성정치가 지속돼 왔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집회 당시 '청와대에 들려오는 아침이슬을 듣고 반성하게 됐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이대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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