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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문화사냥꾼

입력
2009.05.2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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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한국 전통무용을 참으로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열심히 배울 뿐만 아니라 주변의 공연장을 찾아 다니면서 감상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른바 '열렬한 아마추어 춤 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방향으로 활동을 집중하다 보니 때로는 무용 스케줄이 없는 '비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제도 그런 모습을 보이길래 내가 "문화사냥꾼이 되는 것이 어때?" 라고 한 마디를 던졌다. "뭐라고, 그게 뭔데요?" 아내는 호기심을 보이며 무릎을 당겨 내 옆에 앉았다.

내 말의 요지는 어차피 사람들과 어울려 현재의 시간을 잘 활용하고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전통무용 이외에도 얼마든지 즐길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셀 수도 없이 많은 기획 전시와 다양한 장르의 공연, 여러 부류의 참여를 유도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이것들이 상호 결합되어 있는 복합 문화행사가 얼마나 많으냐는 것이었다.

솔깃한 반응을 보이는 아내에게 내친 김에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펼쳐지는 각종 프로그램도 소개하였다. 그리고는 "전통무용만 찾다 보니 이런 것이 당신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이제부터라도 다양하게 즐겨보면서 새로운 취미거리도 찾아보고 빈 시간도 채워 보라구!",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문화사냥꾼이 되어 보라구!" 라고 마무리를 하였다.

무심결에 '문화사냥꾼'이라는 말을 내뱉고 보니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유적사냥꾼' 내지 '답사꾼'이었을 것이다. 좀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 지방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많은 문화유적을 찾아 다녔으니'고대문화의 사냥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어느덧 취미가 습관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서도 주말만 되면 진득이 집에 붙어있지 못하고 괜히 안절부절한다.

그렇다고 어디를 가자니 도심생활에서 일주일간 쌓인 육체의 피로를 풀 정도의 넉넉한 시간도 없고, 서울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의 교통체증도 감내할 엄두가 나지않아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도심의 무거운 인구압, 건물압, 교통압에 찌든 '단순한 일꾼'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해방구'를 모색하던 차에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도 문화사냥꾼이 되어보자'고 방향을 잡게 되었다. 어차피 서울이라는 도심에 갇히어 사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므로 도시를 즐기는 문화사냥꾼이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즉 도심 이곳 저곳을 탐미(耽美)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과 같은 문화 충전소를 의미 있게 찾아 다니는 사냥꾼이 되어 보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면 도시생활이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도심의 편리를 활용하게 되며, 고대 문화유적에 치우치는 '편식'의 습관도 고쳐져 현재의 시간이 나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도 되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시작이 며칠 전에 본 '김주원의 발레이야기'였다. 박물관 행사여서 쉽게 볼 수 있는 탓도 있었지만 발레에 대한 호기심도 은근하였던 터였다. 그리고 이왕 발걸음을 뗀 김에 다음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할 예정인 '르누아르 기획전'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클레오파트라'도 볼 예정이다. '도시의 일꾼'이 '도시의 문화사냥꾼'으로 변신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유병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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