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47) 감독의 영화 '박쥐'가 프랑스 칸의 밤하늘을 날아올랐다.
박 감독의 '박쥐'는 24일 오후 7시(이하 현지시간) 열린 세계 최고의 영화 축제인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영국영화 '피쉬 탱크'(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와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공동 수상했다. 심사위원상은 황금종려상, 심사위원대상, 감독상에 이어 4등상에 해당한다.
한국영화의 칸영화제 경쟁부문 본상 수상은 2002년 감독상('취화선'의 임권택), 2004년 심사위원대상('올드보이'), 2007년 여우주연상('밀양'의 전도연)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박 감독은 국내 최초로 '올드보이'에 이어 칸영화제에서 본상을 두 번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박 감독은 시상식에서 "창작의 즐거움이 영화를 만드는 동력인 것 같다"며 "영화를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고 그 즐거움의 마지막 단계가 칸영화제"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국내 영화계는 '박쥐'의 칸영화제 수상이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엇갈린 반응 뚫고 수상 쾌거
한 신부가 예기치 않은 사고로 흡혈귀가 된 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그린 '박쥐'는 지난달 30일 국내 개봉한 이래 뜨거운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과 "장르와 주제가 모호한 기분 나쁜 영화"라는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24일까지 213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칸 현지에서의 반응도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걸작이 지닌 시적인 힘을 보여준다"(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 인터내셔널')는 호평과 "진정한 영감의 수혈이 필요하다"(미국 연예주간지 '버라이어티')는 혹평이 맞섰다.
14일 칸에서 열린 기자 시사회와 15일 공식 상영회에서의 반응도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일부 기자와 관객은 웃음을 터트리며 영화를 즐겼지만,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적지않았다. 영화제 공식 소식지의 평점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2.4점(4점 만점)이었다. 19편의 영화와 경쟁하며 본상 수상을 확신하기엔 다소 미흡한 반응과 평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심사위원상 수상으로 '박쥐'는 영화적 실험성과 창의성을 인정받게 됐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박쥐'에 대한 비난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모던한 영화라는 반증'이라며 "오랜 전통의 칸영화제가 상을 준 것은 박 감독과 '박쥐'의 국제적인 예술 감각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침체 한국영화에 힘 북돋아
'박쥐'의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은 세계영화계에 한국영화의 건재를 알렸다는 평가와 함께 충무로의 새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영화는 2007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을 마지막으로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수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국영화의 창의성이 예전 같지 않다.
산업적 침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국내외의 분석이 뒤따랐다. 강한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칸영화제가 새로운 영화를 찾고자 하는 한국영화계의 최근 흐름을 알아챈 것"이라며 "'박쥐'의 수상은 한국영화가 다시 활기를 찾는 신호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쥐'의 수상으로 박 감독은 명실상부한 '월드 클래스' 영화인으로 자리잡게 됐다. 박 감독은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2007년 베를린영화제 특별상인 알프레드바우어상('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수상으로 세계영화계로의 도약대를 마련했었다. 한 영화인은 "이번 수상으로 박 감독의 국제적 활동 범위도 넓어지게 됐다"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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