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쇄신특위가 22일 원내쇄신책으로 내놓은 당론 표결제는 당내 의사결정의 민주성 제고 차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청와대를 포함한 지도부의 일방적 당론 제시를 용인치 않고, 당론 결정과정에서 의원들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권한을 확대하자는 게 그 핵심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요 정책에 대한 당론 결정 때 반드시 표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당헌ㆍ당규에 명시'한다는 대목이다. 과거 찬반 양론이 뜨거운 사안에 대해 표결로 당론을 정한 사례가 전혀 없지 않았지만 이를 당헌ㆍ당규로 강제화 하는 것은 우리 정당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제도가 제대로 실행되면 우리 정치풍토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당과 원내 지도부의 입김이 약해진다. 이제껏 대부분의 당론 결정과정은 뻔했다. 의원총회에서 토론이 벌어지다가도 지도부가 정리하면 그만이었고 고위당정회의 결과가 곧 당론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표결제를 하게 되면 의원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지도부의 뜻이 관철된다는 보장이 없어진다.
이 쇄신책을 발제한 신성범 쇄신특위위원은 "불명확한 당론 결정 관행을 개선해 명확히 규정하자는 것"이라며 "지도부의 일방 결정에서 벗어나 헌법기관으로서의
의원들 자율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현재 여당인 한나라당이 이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청와대의 일방적 정책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는 청와대의 지침이 곧 당론이 되곤 했지만 당론 표결제를 통해 상당수 의원들이 정무적 판단 등으로 반대한다면 청와대의 뜻도 거부되거나 수정ㆍ보완될 수 있다.
쇄신특위에서의 당론 표결제 합의는 청와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정책추진에 대한 한나라당내 불만이 상당 수위에 올랐음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있다. 쇄신위는 나아가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도 실질적 크로스보팅(자유투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당론 표결제와 병행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이 안이 여권 지도부에 의해 고스란히 수용될지는 속단키 어렵다.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이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나설 수도 있고 당 지도부로서도 권위와 권한이 크게 축소되는 것이어서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 여당의 정책이 지나치게 갈팡질팡하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쇄신위의 '전권' 범위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쇄신위측은 "지도부 등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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