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자라서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미 열매 속에
교태스런 꽃잎과 사나운 가시를 감추었듯이
고양이 속에는 호랑이가 있다
작게 말아 구긴 꽃잎같이 오므린 빨간 혀 속에
현기증 나게 노란 눈알 속에
달빛은 충실하게 수세기를 흘러내렸을 것이고
고양이는 은빛 잠 속에서
이빨을 갈고 발톱을 뜯으며
짐승 속의 피와 야성을
쓰다듬고 쓰다듬었을 것이고
자기 본래의 어두운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처럼
고양이,
눈 속에 살구빛 호랑이 눈알을 굴리고 있다
독수리가 앉았다 날아가버린 한 그루 살구나무처럼
● 고양이라는 우리와 친근한 포유동물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시인은 인간이라는 종을 되돌아 보았을지 모르겠다. 얼마전 독일의 헤센 주, 메셀이라는 곳에서 발견된 화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거의 집고양이 만한 크기의 화석. 화석을 연구한 학자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딸의 이름 '이다'를 그 화석에게 주었다. 인간이 한 포유류에서 원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 즉 지금까지 학자들이 찾지 못했던 '중간 형태' 가운데 하나를 발견했다고 학계는 떠들썩하다.
고양이만큼 중간 형태가 어디 있을까. 인간에게 길들여졌다 싶어서 보면 고양이는 벌써 저멀리 달아난다. 친구인가 싶어서 안았더니 발톱으로 얼굴을 할퀸다. 하지만 고양이를 빼고서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문명도 상상할 수 없다. 문명인 것도 문명 아닌 것도 아닌 곳에 들어간 고양이.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고양이에게서 왜, 문명과 문명 이전 것이 엇갈리는 지점을 발견하는지를 묻게 된다. 문명과 문명 이전 사이에는 죽음으로 약속한 동행의 결의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문명은 문명 이전을 추억하면서 겸손해지고 문명의 허점과 야성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본래의 어두운 시간'을 응시하는 존재. 문명과 문명의 사이는 이 시처럼 따뜻하고 슬프고도 이기적이다.
허수경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