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인 엄태정(71)씨의 개인전 '쇠, 그 부름과 일'이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 시절 루마니아 조각가 브랑쿠시의 작품세계에서 감동을 받은 후 금속과 추상 작업에 몰두해온 40여년의 여정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2005년 독일 게오르그 콜베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긴 했지만 국내 개인전은 12년 만이다.
그는 1967년 국전에서 철 용접기법으로 제작한 '절규'가 국무총리상을 받은데 이어 1971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철과 동판을 사용한 앵포르멜(비정형미술)에서 시작해 80년대 '천지인' 등 동양적 요소를 강조한 작업, 90년대 '청동+기+시대' 연작 등을 통해 철, 구리, 황동, 청동 등 여러 금속을 탐구해왔다.
최근 그는 항공기 재료로 쓰이는 특수 알루미늄 합금인 두랄루민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알루미늄은 성질이 온순하고 부드러우며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으며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아 중성적인 느낌"이라고 한다. 그는 "이를 통해 지적인 욕심을 버리고 좀 더 순수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나온 최근작을 보면 검은 철이 작품의 윤곽을 이루고, 은색의 알루미늄이 면을 이룬다. 수직과 수평선이 조화를 이루는 극히 미니멀한 작품에서 묵직한 깊이가 느껴진다.
오방색을 입힌 채색 작업도 눈에 띈다. 그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끝에 시간과 공간의 아름다운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단순한 형태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드로잉 작품도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90년대부터 먹으로 드로잉을 해오던 그는 최근에는 물감을 사용해 평면 회화로 제작하고 있다. 가는 펜으로 수없이 그어내려 면을 채운 작품도 있다.
서울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뒤 그는 경기 화성에 있는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쇠와 씨름하고 있다. 그는 "내가 쇠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쇠가 나를 불렀다. 쇠는 바로 나의 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입장료 4,000원. (02)737-7650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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