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봄, 서울. 안개비가 자욱하게 내리고 있었다. 20세의 한 청년이 비에 젖은 낡은 구두를 끌고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검은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었다.
남산타워 밑, 그는 그 위로 보이는 방송국 건물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 곳의 철문은 높고 무거워 좀처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뜻밖에도 그 철문 앞에서 한 신사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신사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그 무거운 철문을 열어주었다.
행운은 그렇게 열렸다. 그러나 막상 안에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려웠다. 청년은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왠지 그곳이 좋았다. 그는 두려움을 떨치고 무서웠던 사람들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러자 무서운 사람들의 얼굴이 차츰 웃는 얼굴로 변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행운아야.” 어렸을 때부터 어려울 때면 그는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는데 문제가 해결되곤 했다. 그래서 그는 늘 신이 자기를 바라보며 지켜주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방송국 밑바닥 생활은 무시무시했으나 그에게는 즐거움이었다.
갖은 잡일은 그의 영화작업의 기초 실습이었다. 연극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다. 발꿈치를 들지 않아도 그의 키가 한 뼘 높아졌다. 마침내 TV에 등장할 기회를 얻었다.
전국이 들썩였다. 홍콩과 일본 무대가 그를 불렀다. 나라 밖으로 간 그는 세계가 그의 품안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모두 그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세계 속에 우뚝 서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배우로서 정상에 섰다.
그러던 그에게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사랑하던 형이 세상을 떠났다. ‘정상에서 떠나라.’ 평소의 소신대로 결단을 내렸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형의 유지(遺志)에 따라 감독의 길을 걷기로 하였다. 그 길은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형이 떠난 빈자리를 채워 고인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영화감독은 그의 꿈이기도 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의 꿈을 꾸게 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영화 2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모두 다시 시작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작업은 연기예술과 달랐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신이 여전히 그를 주시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해 냈다. 역시 행운아였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그는 감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종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벽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영화로 군사독재정권과도 싸웠다. 그는 지고 싶지 않았다. 감독활동에 어려움이 닥쳤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폭을 넓혔다.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세계영화친구들의 도움으로 세계영화계로 뛰어들었다. 한국영화와 영화산업을 세계화 하는데 앞장섰다.
그의 최종 목표는 한국 감독으로서 할리우드 입성이었다. 그 길을 모색하기 위해 세계적인 영화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어금니를 악문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국내로 방향을 틀었다. 국내영화계는 이미 정권과 유착된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들에 의해 짜여지고 움직였다.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그와 연계된 투자사의 자금은 정권과 유착된 그들만의 몫이었다. 감독들의 판도 역시 그 연계 선상에서 형성되었다. 영화시장을 움켜쥔 그들은 집중적으로 자신들만의 세력을 키웠다. ‘국민감독’, ‘국민배우’, ‘문화부장관’이 탄생되었다.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우산을 위해 만든 우상들이었다. 그는 그들과 유착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창작하고 싶었다. 그는 두려움 없이 덤벼들었다. 참패의 고배를 마셨다. 수 없는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아직도 그는 행운아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영화2기는 그렇게 끝났다. 이제 나는 그의 마지막 3기를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 인생은 영화와 같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공을 하였다 하더라도 행복하게 생을 마치지 못하면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영화도 그렇다. 아무리 멋지게 시작하고 좌충우돌 이야기를 복잡하게 끌고 가도 결말이 좋지 않으면 관객은 재미없는 영화라고 외면한다.
나의 영화, 나의 인생 1,2기는 말 그대로 행운의 연속이었다.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영화 3기에는 주문을 외우기로 했다. 나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왔다. 그 사랑에 내 존경과 감사를 보태 돌려주어야 한다.
나의 영화 3기는 시작되었다. 그 동안 ‘나의 이야기’를 연재하며 많은 것을 생각할 銹만?얻었다. 너무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후학들을 위해 대학 강단에 섰다. 사회복지를 위해서도 활동할 계획이다. 척박한 사회에 웃음과 기쁨, 행복을 선사할 영화를 부지런히 만들 계획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그 소망을 위해 나의 영화 3기를 바치려고 한다.
일본에 ‘구로자와 아키라’가 있고, 미국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다면 한국에는 ‘하명중’이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힘차게 나의 마지막 레이스를 달리려 한다.
이야기를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름다운 영화’, ‘영원히 가슴 속에 남을 영화’를 만들어 여러분께 선사할 것을 약속하며 부족했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친다.
그 동안 지면을 할애해 준 한국일보와 부족한 글재주에도 끊임없이 성원해주신 독자제위, 그리고 특히 해외에서 거주하는 교민 여러분의 격려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나는 행운아다. 행운의 이면에 고난과 시련, 인내와 땀이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꿈꾸는 자만이 미래의 문을 열 자격이 있다. 나는 오늘 밤 독자 여러분이 행운의 대박 꿈을 꾸게 되기를 기원하며 주문을 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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