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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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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

입력
2009.05.25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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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헐벗은 나뭇가지를 드러낸 느티나무들이 만든 풍경은 언제나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다 어느날 봄이 온다고 싹을 틔우더니 어느덧 여름의 짙은 녹음으로 포도를 덮는 터널을 만들었다. 저렇게 무성한 잎들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생명에 대한 외경이 전율로 다가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말을 남기고 바위산에서 몸을 던져 남은 생명을 스스로 거두어들였다. 한갓 느티나무로 생명의 외경을 느낄진대, 인간의 생명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삶과 죽음은 세속의 인간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삶의 본질이 허무이고 공(空)이라는 설에 의존하더라도 세속의 인간에게 죽음은 삶보다 쉽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보장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이념이다. 헌법상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것도 이런 인간의 존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자유와 권리의 보장은 언제나 생명에서 시작하다. 생명을 전제하지 않는 자유와 권리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문제는 모든 인간이 가지는 자기결정권에 있어 생명도 자기결정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법은 생명에 대해서도 자기결정권을 가진다고 하여 자살이든 자살미수든 처벌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죽음의 자유도 포함하지만, 문제는 죽음에 있어 타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도 포함되는가 하는 점이다. 생명에 대한 외경은 인간 생명의 절멸을 가져오는 이런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인간이 더 이상 소생할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계속 될 때에도 과연 타인의 도움으로 영면에 들 수 없는가 하는, 삶과 죽음의 한계 문제가 존재한다.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하여 끝없는 고뇌를 해왔지만, 인정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 어느 것도 선악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인간한계의 문제에 해당한다.

우리 사회도 오랫동안 이 문제에서 인간생명은 무한하고, 생명이 있는 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부정될 수 없다는 원칙을 유지하여 왔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존엄이 삶을 전제로 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인정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대법원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은 인정되고, 그때에 타인의 도움을 받아 죽음으로 가는 권리도 매우 엄격한 조건아래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환자가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정도의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을 것과,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환자의 명시적ㆍ 추정적 의사가 있을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를 존엄사(尊嚴死)라고 하지만, 소극적 안락사(安樂死)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단칼에 두 동강을 내는 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실존적 결단으로 '처리'하는 것일 뿐이다. 필자는 매우 엄격한 조건 하에 죽음에서의 존엄도 인간의 존엄성 보장으로 인정하려는 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고 싶다.

지구보다 무거운 인간 생명

이번 판결은 해당 사건에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제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기준과 요건을 마련하여 법률로 입법화해야 한다. 현재 전국 병원에는 많은 환자가 있지만, 병원의 기준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루 빨리 전문가들의 연구와 경험에 기초한 의견을 종합하고, 공청회를 거쳐 신중하게 입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기준을 정하는 데에는, 이 사건에서 환자의 기대 여명이 아직 4개월이나 남아 있기에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공호흡기 제거에 반대한 소수의견 대법관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입법을 지체해서는 안되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사안이다.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 인간 생명이기 때문이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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