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이 올해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지금도 맹렬히 영화를 보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한국 감독으로는 고 신상옥 감독님 이후 두 번째일 것이다. 한국 영화 <박쥐> 가 경쟁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자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 한국영화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묻는다. 이창동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 국적은 영화다. 영화가 얼마나 사람과 그 사회를 향하고 있는지를 볼 것이다" 박쥐>
이 대답 속에 이미 '심사의 규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작품일지도 모를 영화를 놓고 어떤 잣대를 댈 것인지, 그리고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도 잘 만들지만 말씀도 참 잘하신다.
물론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이는 '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제목의 기사 도 있다. 혹시 이건 개그맨 안영미 양이 한 얘긴가 하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도 칸 영화제를 찾으며 "영화를 보고 평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환상적인 잔치를 즐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감독이 다른 감독의 영화를 평가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최근 몇 달 사이 남의 영화를 보고 상도 주고 상금도 주고 하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일이 두어 번 있었다. 심사위원을 수락할 때는 오랜만에 최근 만든 영화들을 일목요연하게 보고 신선한 자극을 받아보리라는 생각에 망설이다가, 그 핑계를 대고 심사에 임하게 된다.
대개 영화제의 성격이나 상을 주려는 주최 측이 마련한 심사 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원하는 영화를 뽑아주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심사규칙에 맞추리라 생각하면서 막상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고스란히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면서 "우선 영화가 재밌어야지"라고 생각한다. 재미는 천차만별이잖아 라는 생각과 함께, 중 고교 시절 주변의 친구들에게 내가 권한 영화는 다 재미없다고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새로움이지, 형식이든 내용이든 새로워야 매력있는 영화지" 한다. 새로움을 어떻게 알 수 있지? 그건 개념이 아니라 느껴야 되는 거지...
이삼일 정도 지나면 다른 심사위원들과 슬쩍 의견을 나눠본다. 역시 천차만별이다. 그 중에 비슷한 취향의 심사위원을 만나면, 전에 없이 급 친해진다. 그리곤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마치 내가 그 영화를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 영화의 대변자가 된다. 나와 다른 취향의 심사위원이 내가 맘속으로 정한 영화를 비평할라치면, 내가 그 작품의 의도까지도 다 설명해준다. 심사의 규칙 중 공정성에 위배된다고? 그렇군, 공정성이 있었지...
간단히 취향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지적, 정서적 체험과 경험 등등이 다 포함된 말이리라. 달리 말하면 공정한 경향성이라고나 할까. 오늘은 내가 심사하지만 내일은 내 작품이 심사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제는 즐기면 즐길수록 좋은 일이다. 영어로 페스티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축제이며 잔치라는 뜻 아닌가? 세계 3대 영화제니, 최우수작품상이니 하며 서열화하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대한민국 취향인 듯하다. 이건 심사의 규칙에 위배되는 관람 태도다.
즐깁시다! 기꺼이 내 취향대로.
이미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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