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마조워 지음ㆍ김준형 옮김/후마니타스 발행ㆍ648쪽ㆍ2만3,000원
악다구니 드잡이를 가리켜 "구라파 전쟁"이라 하는 관용적 표현은 옳다. 유럽의 자중지란적 양상은 절대왕정, 제국주의를 거쳐 현대로 올수록 더하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정치ㆍ경제적으로 통합돼 현재 27개의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대략 1세기 동안 유럽은 '암흑기'였다. 그 양상은 중세의 암흑보다 더 궤멸적이었다.
이 책은 20세기 유럽을 두고 "거대한 묘지 위에 세워진 실험실"이라 축약한다. 민주주의, 진보, 자유 등의 가치 위에 20세기 유럽사가 기반한다는 어설픈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뭐라 둘러대도, 그 결과가 고작 나치의 인종주의적 파시즘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었다는 사실은 살아남은 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저자는 지난 세기 각축을 벌였던 전체주의(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 가운데 가장 유럽적이었던 것이 전체주의라고 단언한다.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들을 세계대전이라는 현장에서 과격하게 실험했던 유럽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당시를 재현한다.
20세기 유럽사는 야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하루에 6,000여명씩, 모두 800만여명의 남자가 숨졌다는 악몽을 떨쳐내기 위한 각종 노력에서 이미 감지됐던 바이다. 1차대전의 악몽에 시달리던 좌우 진영은 우생학, 즉 보다 나은 인간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열망에 매달렸다.
나치당은 권력을 잡게 되자 정신질환자는 물론 혼혈아와 청소년 범죄자에게까지 불임 수술을 강제로 실시했다. 나치에서 볼셰비키까지, 국가는 "우생학적 입장에서 인적 자원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도 관심을"(142쪽) 기울여야 한다는 구실로 집시 박해 등 인종 청소의 징후를 드러냈다. 아우슈비츠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시도했던 자본주의 실험은 우리 시대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무솔리니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사문화시키고 시도했던 '파시즘적 자유주의, 서유럽 진영이 시도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등은 자본주의적 질서로 통합된 21세기가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대목이다. 두 차례 대전의 사이, 유럽은 공적 권력과 사적 권력 간의 균형점을 모색했고 민족경제에 눈떠 경제 호황의 길을 열었다.
유럽이 유럽인 것은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등 일상의 부문에서 미국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반미주의, 다민족사회의 가능성 등은 유럽을 왜 다시 읽어야 하는지 환기시켜 주고 있다. 미국의 20세기가 물질문명의 탐욕과 증식을 보여준다면 유럽의 20세기는 그 후속편이다. 저자는 "1989년 격변의 진정한 승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533쪽)며 "과거의 정치적 이정표가 사라지고 선두에서도 밀려난 유럽은 이제 다양성과 차이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것(540쪽)"이라 전망했다.
복잡다단한 사실들의 틈바구니에는 현대를 통찰할 촌철살인적 명제가 숨어 있다. 1930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가 했다는 "민주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대내외적으로 위험하다"(46쪽), 1941년 히틀러의 "유럽은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인종적 실체"(222쪽), 1953년 이탈리아의 한 경영인이 했다는 "여성이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이 개와 말이고, 남자는 제일 마지막이다"(410쪽)는 등의 말은 21세기를 내다본 것은 아니었을까.
영국 출신으로 미국 콜럼비아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 마크 마조워(사진)는 이 책으로 '에릭 홉스봄, 닐 퍼거슨과 함께 현대 유럽사 3대 연구자'라는 저간의 평가를 새삼 확인시켰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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