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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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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과 민주주의

입력
2009.05.25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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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전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보는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면 그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정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가시지 않는다.

이런 충격과 슬픔과 안타까움이 조금 가라앉은 후에 개인적으로 다가온 것은 권력의 무시무시함이었다. 권력이란 자신의 손에 있을 때는 누구라도 벨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주지만, 일단 남의 손에 넘어가면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끝이 자신의 목줄기를 향하는 무서운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에 큰 상처 남긴 비극

흔히 권력을 둘이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새로 왕조가 들어선 직후에 지난 왕조의 복귀를 노리는 세력들에 의한 반란이 많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후에 역성혁명을 구상하고 있던 이성계가 정몽주의 반격으로 한때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직후에 고려 공양왕과 그 아들을 죽이게 된다. 조카를 끌어내리고 왕위에 올랐던 세조 역시 사육신의 난을 치른 후에 단종을 죽인다.

지나간 권력자들을 죽이기까지는 않더라도, 권력을 잡은 후임자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전임자의 위상을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시 태조 이성계의 예를 들어보면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물러나게 한 이성계는 우왕이 실제로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의 아들이라고 소문을 퍼뜨린다. 전임자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일본 역시 대한제국을 합병한 후에 왕족들을 일본인들과 결혼시켰는데 이 역시 권위 실추를 노린 행동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역사적 사례들은 국민의 자유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하고 평화롭게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기 전의 왕조시대의 것들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런 후임자와 전임자의 불편한 관계는 지금도 다른 형태로 계속되는 것 같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뿐 아니라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이 퇴임 후 영예롭지 못한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전임 대통령이 재임시절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겠지만, 전임 대통령의 권위를 실추시키고자 하는 후임 대통령의 의도가 작용한 측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의 갈등을 미리부터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직 현직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당내의 차기 대통령 후보를 노리는 박근혜 전대표 사이의 갈등이 아닐까 싶다. 물론 한나라당의 갈등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겠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에 자신의 후임자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역대 대통령이 퇴임 후를 걱정하여 어떤 행동들을 하였는가를 국민들은 보고 있었으므로 이런 현재의 갈등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래도 5년 임기 중에서 2년도 지나지 않아 벌써 이런 갈등이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도 심각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함께 고민해야 할 치유 방법

더구나 퇴임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전직 대통령이 이런 비극까지 당했으니 앞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사람들은 국정에 전념하기보다 몇 년 후 퇴임 이후에 닥칠 일을 걱정하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현재의 국정보다 퇴임 후를 더 걱정하게 된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난 주말의 비보가 더욱 더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정말 올바로 운영하기 어려운 것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난 주말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제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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