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춘춘 지음ㆍ이월영 옮김/학고재 발행ㆍ336쪽ㆍ1만4,000원
"명나라 무종의 남색 애호는 제왕 중 최고여서 궁정 안에 사랑하는 남총(男寵)들을 좌우에 서리서리 얽어놓았고, 심지어 군권을 장악하게 하였다… 희종의 남색은 이보다 심해서 각종 사료와 궁사(宮詞)에서 모두 희종이 이성에게 흥미가 없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45쪽)
남성 동성애는 현대에 들어 생겨난 현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남자, 남자를 사랑하다> 는 남색(男色)의 역사가 무척 깊으며, 특히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말기에 이르는 400년 동안은 하나의 풍조로 일반화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금욕의 이데올로기와 종욕(縱欲)의 풍조가 각각 거죽과 속을 이루던 역사를 통해, 동양의 성애 관념이 변화해 온 과정을 거시적으로 짚는다. 남자,>
오스트레일리아 뉴잉글랜드대 언어문화학과 교수인 저자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공공연히 남색이 유행했던 중국의 명청시대 성애 풍조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현대의 성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도 의아하게 비치는 이 시기 남색을 권력관계와 이데올로기 변화의 틀로 분석한다. 인용되는 문헌에는 질펀한 육욕이 흘러 넘치지만, 저자는 거기서 인간의 집단적 광기, 계급주의의 패륜성, 종교적 열광의 잔인성 등을 건져낸다.
정주이학(程朱理學)의 도덕관념이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던 명청시대에 남색이 만연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는 명나라 초기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尊天理), 인간의 욕심을 없앤다(滅人慾)'는 정주학의 이데올로기가 엄격했음을 상기시킨다. 관원의 기방 출입이 금지되고 여성의 정조를 절대시하는 관념이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억눌렸던 욕망은 제국의 쇠락을 틈타 무절제한 방탕으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저자는 "이 시기에 인간의 욕망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인정받았고, 어떠한 형식의 성적 행위도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고 기술한다. 남성의 매음을 위한 남원(男院)이 출현하고 심지어 남성들 사이에 전족(발을 작게 만드는 풍습)이 유행했다. 저자는 "명청시대 선비들은 동성애에 단지 관대한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라, 이를 정상적인 성애 방식으로 간주했으며, 연동(戀童ㆍ미소년)을 끼고 놀며 그들을 부양하는 것을 풍류생활 중 최대의 쾌락으로 여겼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저자는 남색 풍조가 철저한 계급주의적 불평등과 남성중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고 파악한다. 남색의 주체는 사대부 혹은 부유층 남성이었다. 그들을 위해 14, 15세의 소년이 연동으로 매매됐는데, 이들은 2차 성징이 나타나는 16, 17세부터는 소용가치가 다해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또 남색이 풍류로 용인되는 만큼 여성들에게는 폭력적인 성적 억압이 가해졌다.
저자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남색 풍조를 파헤치지만, 그것을 일찍이 폐기됐어야 할 병리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19세기 이후 유입된 서구의 관점에서 다양했던 전통 성문화를 재단하는 것을 경계한다. "한심한 것은 자신들의 성 역사를 '봉건의 잔재물' '낙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존재한 적 없는 '전통미덕'을 창출해 성 역사를 더욱 알 수 없게끔 뒤죽박죽 변화시킨 점이다… 그러나 서구 문화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성애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으며, 비할 데 없이 풍부한 생활방식을 간직하고 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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