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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춘원… 잔바자르… 그리고 관능의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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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춘원… 잔바자르… 그리고 관능의 부처

입력
2009.05.2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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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동안 <유정> 을 쓴 조선의 천재 춘원이 떠오르곤 했다. 결혼생활 중 만난 의대생과 베이징으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그는 기차에 몸을 싣고 이 땅을 가로질러 시베리아의 바이칼호까지 갔다. 처자식을 버린 죄책감, 불온한 사랑의 파멸적 예감으로 그는 영적으로 구원받길 원하였을 것이다. 그 후 춘원이 변절자로서 친일 행보를 하는 데에는 이 사랑을 통해 인생의 바닥까지 보고 온 깊은 허무가 있지 않았을까.

춘원의 컴컴한 길이 궁금할 때는 울란바토르 시내의 초이진 라마 사원을 찾아 사랑을 나누는 청동불상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물러 있곤 했다. 처녀가 부처의 무릎에 앉아 부처를 놓지 않을 듯 껴안고 있다. 입술을 가까이 한 그들의 갈망이 애틋하다. 불상 뒤로 돌아가면 부처의 목을 두른 여자의 팔이 섬세하다. 그 손길에는 신의 문턱에 선 인간의 고통이 서려 있다. 동무를 해준 몽골 친구는 자기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사랑의 사원'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든 이는 17세기 라마교를 몽골의 국교로 삼은 승려 잔바자르(1635~1723)이다. 잔바자르는 다섯 살 때 환생한 부처로 추증되어 어린 나이에 티베트로 보내졌다. 십대 말에 귀국한 그는 왕권과 라마교 최고지도자를 겸하게 되었다. 그는 춘원처럼 극단의 삶을 살았다. 몽골제국을 청나라에 넘기는 서류에 국쇄를 찍었으며, 쇠락한 몽골민족의 문예를 부흥시켰다.

후세 작가 체 에르데네는 소설 <잔바자르> (1990)에 전설 같은 일화를 그려 넣었다. 잔바자르에게 활불이 되기 전부터 어울리던 이웃 여자아이가 있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 사이에 애틋한 사랑이 싹텄다. 가혹한 운명을 못 견딘 여자는 물에 뛰어들어 자진하였다. 홀로 남은 잔바자르는 부처로 하여금 그토록 처절한 관능에 몸부림하게 하였다. 사랑이 삶의 어느 한 밑바닥인 것은 분명하다.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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