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분. 유서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풍운아 같았던 63년의 일생은 이 짧은 시간을 거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가 담겨 있던 컴퓨터 등에 대한 경찰의 추가 조사를 통해 정리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짚어봤다.
23일 오전 5시21분. 노 전 대통령은 사저 내 1층 거실에 있는 컴퓨터에서 문서 파일을 열어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5시26분 문서를 한 번 저장한 뒤 5시44분 총 14줄의 유서를 마무리해 최종 저장을 마쳤다.
5시45분. 유서 작성을 마친 그는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지체 없이 인터폰을 통해 경호동에 연락을 했다. "산책 나갈게요." 5분 뒤인 5시50분 사저 입구에서 이모 경호관을 만나 봉화산을 향해 산책길을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바로 뒤를 경호관이 따랐다. 노 전 대통령은 봉화산 7부 능선, 사저에서 약 500m(직선거리 200m) 거리의 부엉이 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봉하마을로 귀향한 직후 한 두 차례 오른 뒤 1년여 만에 다시 부엉이 바위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관은 평상시와 다른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바위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 30분 만인 6시20분. 멀리 사저 경비 초소에서 근무하던 의경은 바위 위에 모습을 보인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고 경호동에 이를 보고했다.
사저와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엉이 바위에서 노 전 대통령은 한참을 머물렀다. 노 전 대통령이 입을 뗐다. "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사는가?" 농담처럼, 혼잣말처럼 건네는 질문에 경호관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노 전 대통령이 담배를 찾았다. "담배 있나?" "없습니다. 가져올까요?" "괜찮다."
바위 가까운 등산로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지?" 노 전 대통령의 말에 경호관은 본능적으로 접근을 제지하기 위해 등산로 쪽을 돌아봤다. 순간 노 전 대통령은 45m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경호관은 뛰어내리는 뒷모습을 봤지만 손을 쓰기엔 이미 늦었다. 6시45분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바위에 머무른 시간은 20여분. 유서를 썼던 시간과도 비슷했다. 경찰은 "등산객이 누구인지는 현재 탐문 중"이라고 밝혔다.
경호관은 경호동에 연락한 뒤 급하게 바위 아래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업고 뛰기 시작했다. 머리 등에서 출혈이 심한 상태였다. 나중에 추락 지점 주변에서는 피묻은 노 전 대통령의 상의, 목이 짧은 등산화 한 짝이 발견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경호 차량에 태워져 7시께 김해 세영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다. 의료진은 머리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차도가 없자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이송을 결정했다.
8시13분 도착한 부산대병원에서도 의료진의 필사적인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호흡과 맥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의료진은 부인 권양숙 여사가 올 때까지 사망 판정을 미루고 심폐소생술을 지속했다. 9시25분 권 여사가 도착했다. 9시30분 의료진은 결국 사망 판정을 내렸다.
김해=이동렬 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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