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시작된 판사회의가 전국을 거쳐 다시 서울로 올라와 21일 서울고법 배석판사 회의를 마지막으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1주일 넘게 이어진 릴레이 법관회의에서 소장 판사들은 사실상 신영철 대법관의 용퇴를 요구했고, 이제 신 대법관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만 남아있는 상태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엄중경고 조치가 있던 지난 13일 사과문을 낸 뒤 두문불출하다 일주일 만에 언론에 모습을 내비쳤던 신 대법관은 "목이 아프다"라는 말만 남긴 채 다시 '칩거'에 들어갔다.
일각에선 전국 26개 하급심 법원 중 17개 법원에서 열린 판사회의에 압력을 느껴 신 대법관이 거취 정리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신 대법관의 거취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법부 전체의 문제 및 정치적 상황과 연관됐다는 점에서 지금 상태에선 결코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판사회의에 색깔을 입히고, 야권에선 탄핵소추안 발의를 준비하는 등 법원 내부의 문제를 보ㆍ혁 갈등으로 비화시키는 것이 신 대법관이나 법원 내부에서도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의 한 단독판사는 "최초 회의에서 신 대법관이 후배에게 밀려나는 모습이 되지 않게 우회적으로 '퇴로'를 만들어 줬지만, 최근 이념갈등의 한 축으로 이번 사태를 몰아가면서 악화된 측면이 있다"며 "이 상태에선 신 대법관도 '용단'을 내리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용퇴 할 수밖에 없다는 법원 내부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소장판사와 여론에 떠밀려 사퇴하게 되면 사법부가 외풍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점을 우려, 사태가 잠잠해 지는 9월 김용담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후임 인사가 있을 때 함께 물러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판사회의가 다시 개최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어 사퇴는 시간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판사는 "후배들이 이번에는 용단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줬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때는 다시 판사회의를 소집할 수도 있다"며 "이 경우에는 더 강도 높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은 신 대법관에게 넘어간 만큼 결자해지를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29일 열리는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도 이번 사태와 관련된 내용이 논의될 예정이다. 비록 간담회에서 신 대법관의 사퇴와 관련된 직접적 논의가 이뤄지긴 어렵겠지만, 법원장들도 사태의 장기화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심화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여러모로 신 대법관은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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