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가려 목포행 KTX에 몸을 실었다. 읽으려 챙겨간 책은 펼치지도 못했다. 곗놀이를 가는 아주머니들로 역방향 좌석까지 꽉꽉 찼다. 부시럭부시럭 떡을 돌리고 며느리가 싸주었다는 김밥도 나눠 먹었다. "김밥 참 얌전하네." 계원들이 돌아가며 며느리 칭찬을 했다. 김밥 얻어 먹었다며 뒤의 아주머니는 오이를 뚝뚝 분질러 나눠준다. 오이, 단무지 냄새에 곳곳에서 터지는 트로트 벨소리까지 영 KTX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객차 안에서는 잡담은 삼가하고 휴대폰 벨소리도 진동으로 해주십사는 안내방송이 몇 번이나 나왔지만 아주머니들한테는 이도 박히지 않을 소리였다. 여덟 살 때 외가로 가는 장항선 완행열차를 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외가까지는 다섯 시간 걸렸는데 그 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앞으로 달려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한번은 온양온천역에서 뒤로 달렸다. 긴 의자가 두 줄 놓인 기차였다.
할머니들은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보았다. 내 옆에는 술에 취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별안간 안주머니에서 돈다발을 꺼내 흔들고 내게 삶은 달걀도 사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누군가 그 돈을 훔쳐갈까 걱정이 되었다. 아저씨가 졸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도둑을 지켰다. 무엇을 판 돈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하니 조금은 슬픈 돈이었던 듯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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