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판사회의가 잦아들면서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를 둘러싼 파문은 외견상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자진 사퇴를 거부하는 신 대법관이나 용퇴를 촉구하는 소장 판사들이 각자 입장을 철회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정중동(靜中動)의 대치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하루에만 전국 10개 법원에서 일제히 개최됐던 판사회의는 19일에는 광주지법 한 곳에서만 열렸다. 광주지법 단독판사들은 이날 회의에서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행위를 재판 독립 침해로 규정하고, 대법원의 조치가 미흡하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로써 대법원을 제외한 26개 전국 단위법원 중 14일 이후 판사회의를 개최한 법원은 총 15개로 늘어났다.
판사회의 확산은 일단 소강상태이지만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를 압박하는 물밑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이우재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전산망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하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를 게재하며 신 대법관을 은근히 압박했다.
전국 고등법원 중 가장 규모가 큰 서울고법의 일부 배석판사들은 판사회의 소집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문의 진원지였던 서울중앙지법의 일부 단독판사들 사이에도 신 대법관의 용퇴를 명시적으로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현직 대법관마저 신 대법관 거취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재판권 침해 문제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자칫 법관의 성향을 둘러싼 이념싸움으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박시환 대법관은 자신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현 상황을 '제5차 사법파동'으로 규정한 언론 보도에 대해, 법원 내부전산망에 글을 올려 "(소장 판사들의) 특정한 주장에 동조한다는 의사 표시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박 대법관에 대해 일부 언론이나 사법부내 보수파의 맹렬한 비판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인 중의 공인'인 대법관으로서, 또 사법부 내홍의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로서 신 대법관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19일에도 그의 침묵은 계속됐다.
그는 점심식사를 위해 잠깐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처럼 계속 집무실에만 머물렀다. 다른 대법관 집무실에는 종종 외부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신 대법관을 찾는 발길은 완전히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창기자
권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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