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5월. 글로벌 히트폰으로 떠오른 '초콜릿폰' 탄생(2005년11월)으로 사내 모두가 들떠 있던 그 무렵, LG전자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MC) 이용자사용환경(UI) 개발실에는 그룹 수뇌부로부터 쉽지 않은 '지령'이 하달됐다.
"LG휴대폰만이 미래의 고객과 소통할 만한 뭔가를 찾아낼 것."
초콜릿폰(누적 판매량 2,030만대, 2009년 4월말 기준)의 선전에 힘입어 적자의 늪에서 겨우 빠져 나와 이제 좀 한숨 돌리려 했던 LG전자로선 결코 만만치 않은 미션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LG전자는 지금 확고한 글로벌 '빅3'로 자리잡았다. 소니에릭슨을 밀어내더니, 모토로라까지 따라잡았다. 이 쯤되면 '돌풍'을 넘어 '신화'라 일컬어도 무방하리라.
19일 서울 가산동 LG전자 MC 연구소에서 'LG폰 신화'의 주역인 송원영(52) MC사업본부 이용자사용환경(UI) 개발실장(상무)을 만났다. 그는 휴대폰 메인 화면의 기본 메뉴 구성 등을 디자인하는 UI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3년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항상 누군가 먼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건 힘들잖아요. 종전 제품과는 전혀 다른 트렌드를 만들어 내야 하니까요. 당시로선 획기적인 모델이 필요 했습니다."
그랬다. 한 때, 히트모델 부재로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5위까지 내려 앉으며 고전했던 LG전자였기에 '초콜릿폰'의 상승세를 이어갈 차세대 전략폰은 절실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접어든 중요한 시점에서 LG 휴대폰의 명운이 UI 개발실에 떨어진 셈이었다.
"이미 기본 기능으로 자리 잡아버린 카메라와 MP3 같은 기본 기능이나 막대, 폴더, 슬라이드 등의 정형화된 외관 디자인에선 해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답답하기만 했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을 비롯해 휴대폰 분야에서만 7년 경력의 베테랑이었지만 그 역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거꾸로 생각하고, 뒤집어 보자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직원들과의 아이디어 회의 과정에서 알게 됐어요. 보이는 외관 디자인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찾아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고객들의 숨은 욕구와 소통을 시도해 보자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고객들의 숨겨진 감각인 '촉각'을 보다 넓은 화면의 LCD창에 적용 시켜 감성을 자극하는 '풀터치스크린폰'이 자연스레 머리 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기술과 감성이 만나는 접점이었기에, 풀터치스크린폰의 완성까지는 산고의 고통도 컸다.
땀의 결실은 실적으로 나타났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 등 경쟁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차별화된 풀터치폰을 잇따라 쏟아낸 LG전자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07년 1분기 6.4%에서 2008년 1분기엔 8.6%로 상승하더니, 올해 1분기엔 9.2%로 두 자리수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애플의 '아이폰' 보다도 3개월 앞서 세계 최초로 풀터치스크린폰인 '프라다폰'(2007년3월 출시)을 선보인 LG전자는 이후, '뷰티폰'(700만대)과 '보이저폰'(350만대), '쿠키폰'(280만대) 등이 호조를 보이면서 이 달 들어 풀터치폰에서만 2,000만대의 누적판매량을 기록했다.
풀터치폰의 '종가'와 글로벌 '넘버3'란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잠재 고객들과 소통을 위한 LG휴대폰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부터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이 벌이는 진검 승부에서의 열쇠는 편리함과 어우러진 감성을 누가 잡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감'이 휴대폰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