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전화가 울리면 덜컥 겁부터 났다. '또 구속된 건 아닐까?' 노심초사 밤을 지새는 날이 이어졌다. 열 아홉 때 만난 남자친구는 동갑내기에 11월29일 생일도 같아 천생연분이라 여겼다. 그런데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흐트러진 모습일 때가 많았다.
다른 친구가 말했다. "동우 약 하잖아." 1988년 만난 지 석 달 만에 교도소에 간 그를 옥바라지했다. 측은했고 '내가 옆에 있으면 곧 끊겠지'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1992년 결혼했다. 그 후 근 십년을 '마약쟁이'의 아내로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은 고등학생 때부터 본드를 마셨다. 이내 약물 중독으로 번졌다. 데이트 할 때도, 결혼한 이듬해 첫 아들이 태어날 때도 약에 취해 있었다. 1995년 히로뽕에 손을 댔다가 바로 구속돼 2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99년 둘째가 태어날 때는 히로뽕 중독이었다. 2000년 장모 장례식 때도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며 팔에 주사바늘을 댔다. 어느날 아내는 자살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2001년 그가 다시 구속되기 직전이었다.
20일 오전 인천 남동구 고잔동 남동공단 내 떡집 '보리떡 다섯 개'.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이 재활의 꿈을 키우고 있는 곳이다. 남편 신동우(40)씨와 부인 한순덕(40)씨는 때이른 더위 속에서 가래떡을 뽑고 포장하느라 굵은 비지땀을 쏟고 있었다. 신씨는 이 곳에서 생산팀장을 맡고 있고, 아내는 떡집이 바쁘게 돌아갈 때 들러 일손을 거든다.
잠시 일손을 놓은 신씨는 "8년 전 마약과 작별했다"고 했다. "마약으로 감옥 갔다가 출소한 사람들의 모임인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소나사)의 재활팀장도 맡고 있습니다. 다 집사람 덕분이죠."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남편의 마약 중독은 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술을 입에 댔고 급기야 알코올 중독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과 무기력증도 동반됐다. 아이가 울면 그냥 '우는구나' 하고 말았다. 문제는 아이까지 번졌다. 외적충격으로 틱 장애를 앓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아내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던 중 2001년 남편이 또 감옥에 갔다.
"남편이 없는데 아이까지 아프니 죽을 수도 없었어요." 한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용원 목사를 찾았다. '소나사' 대표인 그도 17년 동안 마약에 빠졌다가 극복했다고 했다. "목사님이 구치소로 면회 오더니 '니 인생 나한테 걸어볼래?' 하시더군요. 어차피 버린 인생, 그러겠다고 했죠." 신씨는 그 해 10월 출소 후 곧장 신 목사에게 갔다.
같은 처지 사람들끼리 떡집을 시작했다. "예전 친구들은 안 만나요. 서울 출신인 제가 인천에 정착한 것도 마약을 끊기 위해서 였죠.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지금은 이 지역 마트와 슈퍼마켓 등 10여곳에 떡을 납품합니다. 아직 빚에 허덕이고 있지만요. 허허."
남편이 변하자 가족도 달라졌다. 아들의 틱 장애는 신기하게도 자연 치유됐다. 한씨는 "아이들도 이제는 '우리 아빠 예전에는 마약 중독자였는데 이제는 재활팀장 하신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며 밝게 웃었다. 그래도 신씨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다 씻지 못했다. "마약쟁이의 아내, 마약쟁이의 아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심정이 어땠겠어요. 그 미안함이 응어리로 남아있어요."
그 사이 한씨는 '중독자의 아내'에서 '회복자의 아내'가 돼 강단에 서고 있다. 2002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 마약사범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상담을 해주고 있다. 한 두 번 부르면 가던 것이 한 달에 10여 차례로 늘었다.
마땅히 하소연 할 곳 없던 중독자 가족들에게 한씨의 경험담은 희망이었다. "가족이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면 반드시 치유할 수 있다"는 말에 "헤어지려고 했는데 다시 노력해보겠다"고 마음 바꾼 이들도 여럿이다. 제대로 된 가족 상담소가 없는 현실도 그가 강연에 나서게 된 이유다.
"남편이 마약에 절어 살 때 상담할 곳이 없어 알코올 중독 상담소를 찾았는데, 마약을 점차 줄이라고 하더군요. 남편은 일주일 내내 하던 히로뽕을 3,4회로 줄였다며 당당하게 주사기를 갖다 댔어요. 잘못된 상담이었죠."
한씨는 절박하지 않으면 마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상담할 때 '끊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더 하고 오라'고 해요. 정말 절박하지 않으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댈 것이 뻔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어렵게 마약의 수렁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사회의 눈길은 차갑다. 독거노인과 수감자들에게 떡을 무료로 나눠주는 등 봉사에 힘써도 '마약 중독자'란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
'출소자 공동체'라는 명함을 보고 떡집 건물주가 혐오시설이라며 소송을 걸어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는 괘념하지 않는다. 마약에서 벗어났다는 자신감과 예전과 다르다는 당당함 때문이다.
"예전엔 고기 먹고 있어도 항상 불안했는데 지금은 밥에 김치만 먹어도 좋아요. 마약 끊은 남편이 고마워요." "집사람이 잘 견뎌줬기 때문에 변할 수 있었죠." 서로 공치사에 바쁜 부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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