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19일 검찰에 소환된 것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수사도 정점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검찰은 이날 오전 10시쯤 천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렀다고 밝혀 사법처리 의지를 명확히 했다. 혐의는 두 가지다. 태광실업 세무조사 및 검찰 고발을 무마해 달라는 박 전 회장의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고 실제 구명 로비를 벌이고(알선수재), 주식거래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의 도움으로 세금을 탈루했다(조세포탈)는 것이다.
검찰은 천 회장이 지난해 7~11월 박 전 회장 세무조사를 총지휘하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수 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미국 체류중인 한 전 청장에게서 이메일을 통해 '천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관련 청탁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문제는 천 회장이 박 전 회장에게서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받았느냐는 것이었다. 알선수재죄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과 관련해 금품이나 이익을 요구하거나 받았을 때 성립된다. 하지만 천 회장은 박 전 회장과 30년 인연을 쌓은 '의형제' 사이로 그 동안 자금거래 또한 빈번했다는 점이 고민거리였다. 자금의 대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검찰의 '고민'은 두 사람 사이의 긴밀한 사업상 관계가 실마리가 돼 풀렸다. 박 전 회장은 2003년 천 회장의 계열사인 세중게임박스에 8억원을 투자했다. '시장성 없는 투자'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박 전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2005년 2억9,000여만원을 더 투자해 지금까지 회수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바로 박 전 회장이 투자금을 돌려받지 않음으로써 천 회장에게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 대가를 치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당시 박 전 회장이 건넨 2,000만원에 대해선 천 회장이 "선수단 격려금으로 제공했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이 역시도 세무조사 무마의 대가가 아닌지 따져보고 있다.
검찰이 천 회장을 옥죄는 수단은 또 있다. 검찰은 그 동안 천 회장이 2000년부터 박 전 회장의 도움을 받아 계열사를 인수합병하는 과정을 전방위로 추적, 85억원 가량의 양도소득세와 증여세를 탈루한 정황을 포착했다.
천 회장은 2003년 정보통신업체인 나모인터랙티브의 경영권을 확보한 뒤 2006년 세중여행과 합병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의 지인들을 동원해 주식을 차명거래해 경영권을 2세에게 넘기고 40억원 이상의 차익까지 거뒀다. 검찰은 그러나 이는 천 회장의 개인 범죄일 뿐, 지난해 세무조사와 시점상 너무 멀어 구명로비의 대가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천 회장을 20일 한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사전구속영장 청구여부를 검토할 전망이다. 범죄 액수로 볼 때 영장 청구가 유력해 보이지만, 신병처리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노 전 대통령과의 형평성도 고려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