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옛날 옛적' 한센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옛날 옛적' 한센병

입력
2009.05.19 23:51
0 0

<모든 사망환자는 본인 및 가족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이 곳에서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화장 후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소록도 환자들은 '3번 죽는다'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는 발병, 두 시체 해부, 세 화장이다. 정관절제는 한센병 환자의 근절을 위해 1927년 일본의 연구 의학자에 의해 제기 되었는데…>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1번지 국립소록도병원 건물 가운데 문화재청등록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된 '검시실(檢屍室)'의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판 내용이다. 건립연도는 1935년으로 돼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5월 '자혜의원'이란 명칭으로 설립돼 1925년 조선총독부칙령으로 환자의 격리ㆍ수용을 강요했으니 당시의 참상은 검시실 안내문에서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광복 후 1957년까지 전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11건의 집단학살사건이 있었다(국가인권위원회 2006년 1월 발표). 좌익들이 저지른 것이 2건이고, 5건은 우리의 경찰이나 군대가 자행한 것이며, 나머지는 인근 주민들과의 충돌과정에서 일어났다. 11번째 발생한 1957년 8월 경남 삼천포 비토리(飛兎里)사건(26명 피살)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의 전환이 시작됐다.

▦세종대왕 시절 이미 국가차원의 구라(救癩ㆍ나병 구제)시설이 설치됐고,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자세한 진찰기록이 소개돼 있는 흔한 병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특별한 천형(天刑)이나 괴질(怪疾)이 아니었다. 1873년 나병요양소에서 일하던 노르웨이 의학자 헨리크 한센이 처음으로 그 병균을 찾아냈다. 지구상에 창궐하는 전염병 가운데 최초로 발견된 병균이다. 전염병 원인을 유전이나 풍토에서 찾던 시절에 '사람 사이에 옮길 가능성이 있는' 병균의 존재는 발견했지만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해 '격리'를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수많은 전염병균 가운데 시험관 배양이 안되고 분열ㆍ증식이 가장 느린 '저병원성'이란 사실이 늦게 확인됐고, 그래서 치료약도 나중에 개발됐다. 그의 이름을 딴 한센병균의 발견은 다른 전염병 치료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지만, 그 환자들에겐 이미 과도한 불행을 안긴 뒤였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도 전염증가는 거의 없고 자연소멸만 기다리는 '옛날 옛적'의 병이 됐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소록도를 방문, 냉대 차별 편견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한 일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를 계기로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