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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43> 화분의 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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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43> 화분의 둘레

입력
2009.05.1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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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의 둘레-김행숙

이 작은 화분 한 개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꽃을? 꽃과 잎을? 꽃과 잎과 벌레를? 나는 화분의 세계를 망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플러그를 뽑듯이 나는 화초를 뽑아 던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물이 끓지 않고, 이제부터 조용해져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전화선을 자르듯 너의 줄기를 자르고, 이전과 이후가 각각인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나는 가장 가난한 삶을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라고 생각했습니다.

발자국이 없고, 물이 없고, 짹짹짹 새소리가 없고, 엄마가 없고 엄마가 없는. 엄마 없이 떠 있는 별의 지표면에서. 한 명의 아기도 울지 않는 별에서 살아가는 어떤 삶, 열렬하고 고독하고 게으른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가장 넓은 화분의 둘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걷다가 걷다가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 몇 개를 내내 만지작거렸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습니다. 내일도, 라고 생각했습니다.

● 시인이 최근 ‘세계시인대회’에 참석하러 터키에 갔을 때 쓴 시이다. 뭘했나 했더니 화분 하나를 관측하고 왔다. 12시간 동안 가장 큰 화분의 둘레를 반쯤 돌고는 지쳐서 핵핵거리며 화분의 안쪽을 들여다 본다.

물이 있고 화초가 자라고 개미떼처럼 작게 보이는 들소와 철새들이 습지를 이동한다. 무엇보다, 끝을 모를 골목들을 따라 끝을 모를 인생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화분을 물기 젖은 눈길로 바라봐 주는 이가 없다면 그것은 그저 바싹 마른 모래가 담긴 양동이…. 오늘도 화분 하나가 뱅글뱅글 돌며 우주를 건너간다. 지구인들은 가장자리를 따라 여행하며 자기 화분을 바라본다. 때로 기쁜 눈길 위에 때로 슬픈 눈길 위에, 새파란 ‘우리’ 별이 떠 있다.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 김행숙 1970년 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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