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아랫배가 쩍쩍 갈라지자 저수지는
물 빠진 빈 그릇이 되었다
저수지 만한 입을 가진
커다란 울음이 되었다
울음은, 풍매화 홀씨들을 공중에 날려 보내는
텅 빈 바람으로 떠났다가
돌아와 꽃대궁을 흔드는 고요로 머물다가
마른 땅 밑 먼 수맥을 아슬히 울린다
저 물 빠진 황야로 걸어 들어가
한나절을 파헤치던 사람들과
주둥이를 빼고 목메다 간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만지는 약손이 된다
작은 울음들이 목청껏 울고 간 먼 골짜기까지가
울음의 커다란 입이다
챙챙거리는 소리들이 간신히 잠든 지층까지가
울음의 고요히 타는 입이다
나는 울음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
귀기울여본다
큰 울음은 작은 울음들로 빽빽하다
큰 울음은 오늘도 울음이 없다
● 마른 저수지 앞에서 서있을 때면 참 난감하다. 저수지라면 물이 담긴 곳인데 그곳에 물은 없고 물이 있던 자리만 있다니. '물 빠진 빈 그릇'처럼 보이다가도 드디어 '저수지 만한 입을 가진 커다란 울음'으로 보일 때 그 울음이 어디로 갔는지 사유하게 되는 건 거의 슬픔에 속한다.
그 울음이 정처없이 떠돌다가 심지어 '마른 땅 밑 먼 수맥'조차 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울음은 드디어 '약손'이 된다. 시인은 울음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없는 울음. '작은 울음들로 빽빽한 큰 울음'. 그래서 정작 큰 울음은 없다. 이 시는 이영광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과 사귀다> (2007)에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들끓는 그러나 고요한 울음소리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울음의 고요하게 타는 입'까지를 본 이도 아마 없으리라. 그늘과>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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