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1997년부터 2006년 12월까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동분서주했던 코피 아난(71)이 재임 기간 초강대국 미국의 등살 때문에 마음 고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난 전 사무총장의 대변인을 8년 동안 맡았던 프레드 에카르트는 최근 발간한 전기 <코피 아난(kofi annan)> 을 통해 약소국 태생 유엔 수장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뇌와 비애를 진솔하게 소개했다. 코피>
AP통신은 18일 에카르트는 318쪽 분량의 책에서 아난 전 총장이 2003년 미군 주도의 이라크 침공 후 각종 회의에 참석했지만 말문을 닫았으며 우울증으로 약물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아난 전 총장은 이라크 전쟁으로 세계가 양분되고 강경론자인 조지 부시 대통령 정부의 자신에 대한 비판에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 여기에 2003년 8월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유엔 사무소에 폭탄 테러가 감행돼 본인이 직접 특사로 가도록 당부한 브라질 외교관 세르지우 비에이라 지 멜루를 비롯해 22명의 직원이 숨지자 견디기 힘들어 했다.
에카르트는 "아난 전 총장의 많은 측근들은 그가 바그다드 유엔 사무소의 폭파사건이 발생한 2003년부터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얘기했다"고 전했다. 비에이라 지 멜루의 사망으로 그가 우울증을 앓게 됐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확실히 의사를 찾은 적이 있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청했을 것으로 에카르트는 짐작했다.
에카르트는 당시 아난 총장의 건강에 대해 그와 가까운 이들 모두가 상당히 우려를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아난 전 총장은 또한 이라크 침공이 1945년 채택된 유엔헌장에 명기된 집단 안전보장 개념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했다고 에카르트는 술회했다.
에카르트는 "아난 전 총장은 눈 앞에서 유엔헌장이 산산조각 나고 세계는 중간이 싹둑 잘려나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에카르트는 아난 전 총장과 부시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친한 사이였지만 아난 전 총장이 미군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불법'(illegal)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미국 정부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아난 전 총장이 이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불법'이란 표현을 쓰면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회고했다. 이에 대해 아난 전 총장도 "내 생각도 그렇다"며 슬픈 어조로 답했다.
에카르트는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아난 전 총장의 얼굴이나 행동거지는 평온하고 위엄을 유지했지만 회의 탁자 밑에 숨겨진 발과 다리의 움직임에서 초조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난 전 총장은 에카르트가 집필한 자신의 전기에 허락 하에 쓰인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에 상당히 만족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제네바에 거주하며 아프리카의 대변자와 중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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