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틀어쥔 가장 뚜렷한 키워드는 녹색성장이다. 녹색이란 말을 특허 받은 것도 아니고 그것을 성장과 연결시킨 것도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건전보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과감하게 치고 나간 것이다. 녹색성장은 경제위기와 정치이념의 빈곤을 극복해야 하는 정부에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다가왔다.
'무늬만 녹색' 비판 자초한 잘못
녹색성장은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정부 부처나 정책물결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기업과는 달리 대다수 국민에겐 아직 실감나지 않는 슬로건이다. '녹색'과 '성장'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녹색뉴딜이 발표되자 대뜸 일자리 창출이 비교적 쉬운 토목공사 위주의 '무늬만 녹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녹색뉴딜의 근본은 콘크리트라며 "전직 건설사 CEO인 이 대통령은 삽과 콘크리트가 관련된 일자리만 나온다면 어떠한 녹색정책도 좋아한다"고 비아냥댔다.
정부가 녹색성장을 들고 나온 것 자체는 가상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학계, 환경단체들은 심하다 싶을 만큼 혹평을 퍼부었고, 여론 역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환경정책은 그 연유야 어쨌든 낙제수준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들 정부가 녹색성장을 내세웠더라도 그랬을까.
청계천 성공의 추억은 환경 아젠다가 개발과 성장으로 연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의무 강화가 예상되고 세계 금융위기로 불황에 빠져드는 시점에 녹색성장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은 귀신 같은 기업가적 센스였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비판해도 녹색과 성장 자체를 배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장에 녹색이 들러리를 선다는 것을 욕해도 성장을 녹색으로 한다는 것을 탓할 순 없다. 또 녹색성장이 아니라 녹색경제, 녹색사회를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지만,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는 게 관건인 마당에 성장을 멈출 수 없다면 녹색성장이야말로 불가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ㆍ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녹색이 없진 않았다. 다만 녹색보다는 환경이, 성장보다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주류적 화두였을 뿐이다. 녹색성장이란 말을 환경산업 진흥, 환경기술 개발, 세계환경시장 개척 또는 환경경영 확산으로 바꾸어 본다면 아무도 이를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녹색성장에 대한 비난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집중된다. 사람들은 녹색성장에서 환경산업과 기술을 연상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를 떠올린다. 그 배경에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의혹이 자리잡고 있다. 아닌게아니라 녹색뉴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4대강 살리기'다. 물론 '인터시티 자전거도로' 같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사업들도 없지 않다.
여전히 이명박 정부는 불신의 디스카운트를 떨치지 못한 것 같다. '무늬만 녹색'이라는 말에서 사람들은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성장이 과연 진정한 녹색인지 되묻는다. 녹색성장은 이미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나오고 사업이 착수되어 그 색깔이나 당위성을 놓고 왈가왈부할 단계를 넘었다. 그러나 녹색성장이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으로 구현되려면 불신의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로드쇼와 사업성과의 시연이 필요하다.
구체적 대안으로 국민 설득해야
4대강을 살리겠다면 수질개선을 위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다. 그린 IT, 녹색정보화로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생기는지 보여줘야 한다. 특히 녹색성장으로 녹색경제, 녹색사회를 이룩하는데 필요한 기회와 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녹색성장을 내세우느라 그 동안 공들여 구축한 지속가능발전의 체계를 뒤흔드는 일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녹색성장이 진정으로 녹색이기를 원하며, 그럴 때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