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선거법을 개정, 240만 명에 이르는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이후 여야 각 정당이 해외 지지조직 구축에 나서 동포사회가 심각한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역만리에서 단합해도 살기가 쉽지 않은 해외동포 사회까지 편가르기를 종용하는 정치권을 향해 개탄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외국 도시에서는 요즘 한국의 여야 정당과 연계된 모임이 부쩍 자주 열리고 있다. 지난 2월 한나라당 지지 교민들로 발족한 'US한나라 포럼'은 최근 LA에서 자주 모임을 갖고 한나라당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성향의 LA 교민 400여명도 이달 초 현지에서 모임을 갖고 친(親) 민주당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정치적 모임이 생기면서 교민들은 어느 쪽에 참여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런 움직임을 후원하는 등 해외 지지조직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얼마 전 만든 해외동포분과위(위원장 이용태) 사이트에 들어가면 미국 LA 뉴욕, 일본 도쿄 오사카, 독일,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세계 40여 개 지역에 조직책임자가 내정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이미 수천 명이 한나라당 명예회원으로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한나라당의 해외 조직 회원이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박명현(미국 담당) 김영호(중국 담당)씨 등을 재외동포특위 공동위원장으로 임명, 미국 일본 중국 등에 '국제협력 재외동포위원회'(가칭)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미국 LA와 뉴욕, 일본 오사카 등에서 준비 모임을 가졌다"고 밝혔다.
여야는 정당법상 정당이 해외에 지부를 둘 수 없게 돼 있는 점을 감안, "해외에서 자발적 모임이 생겨난 것일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여야 정당들의 해외조직 만들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에 대해 학계나 시민단체는 "동포사회의 분열은 국가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시급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경희대 박한규(정치학) 교수는 "선거법 등을 보완, 여야 정당이 해외조직을 만들거나 해외조직에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해외의 한인단체나 향우회 등이 단체 차원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해외 교민들이 국내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줄 경우 그 내역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국내법을 해외에서 강제하기가 어렵지만 선거법이나 정당법 등을 보완, 동포사회의 분열을 줄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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