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병태 칼럼] 황석영이 MB에게 도움될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병태 칼럼] 황석영이 MB에게 도움될까

입력
2009.05.19 01:51
0 0

기억이 가물하지만 1990년인가 베를린 특파원 시절에 작가 황석영을 만난 적이 있다. 89년 3월 북한에 몰래 들어가 김일성 주석을 만난 뒤 독일로 와서 머물 때였다. 짧은 강연을 한 듯 한데 내용은 기억에 없다. 다만 '분단의 벽을 넘어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밀입북을 감행했다면 문익환 목사처럼 처벌을 무릅쓰고 곧장 귀국해 '통일운동'에 힘쓸 일이지, 이미 통일된 자유도시 베를린에서 뭘 하는지 마뜩찮게 여겼다.

유치한 '지식인 현실참여' 논쟁

기록을 보니 황석영은 90년 <흐르지 않는 강> 을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다. 이듬해 미국 뉴욕으로 옮겼다가 YS 정권이 들어선 93년 귀국, 국가보안법위반으로 7년형을 살다가 98년 DJ 정부에서 사면됐다. 그 사이 방북기 <사람이 살고있었네> 를 냈고, 노무현 정부 때 진보작가 중심인 민예총 이사장을 지냈다.

나는 솔직히 작가의 이런저런 '운동'과 '투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식인의 현실참여에 반대해서라기보다, 흔히 끝이 초라하고 미약한 것을 보고 들은 때문이다. 황석영의 독일체류를 도왔다는 <양철북> 의 작가 귄터 그라스도 그렇다.

전후 독일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그라스는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한 진보지식인으로 명망을 쌓았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 뒤 "동독의 사회주의 이상은 간직해야 한다"며 통일방식에 반대, 시쳇말로 살짝 맛이 갔다. 그 때문이지 95년 통일배경 소설에서 정치기류에 쉽게 좌우되는 독일인의 '배신'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격한 논쟁을 불렀다.

그라스는 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을 무렵인가, 나치 과거 비판에 앞장선 그가 히틀러 친위대(Waffen SS)에 자원 입대한 전력이 드러나 '배신'과 '위선자' 논란에 휩싸였다. 침묵하던 그는 결국 자서전에서 어두운 과거를 인정했다. 자못 창대한 그의 문학이야 온전하겠지만, 현란한 현실참여 행적과 인격에 맛이 간 것은 틀림없다.

황석영의 이른바 '큰 틀'의 MB정권 참여로 논란이 많다. 진보 쪽에서는 말보다 손가락질이 더 거슬리는 진중권이 앞장섰다. '변절' 비난을 넘어 숫제 자기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물고기 아류로 매도한다. 한때 어깨동무한 이를 비판하는 언사치곤 천박하다.

보수쪽은 언행이 조신하지 않은 좌파의 '전향'을 반기기 뭣한 모양이다. "좌파에 박해 받은 이문열을 먼저 대통령 전용기에 태웠어야 한다"고 외친다. 놀이동산도 아닌데 "왜 저 애가 먼저야?"라고 푸념하는 모습이 유치하다.

애들 난장판 같은 속에서 더러 어른스러운 말도 들린다. 윤평중 교수의 "한바탕 놀아보게 하라"는 말은 너무 대범하다. 김지하 시인이 '원래 휘젓고 다니는 사람인데 놔두세요, 뭐 하러 시비 겁니까"라고 말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진중권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내뱉은 것은 덤이다.

그런데, 나는 황석영을 시비하기보다 그와의 '동행'이 과연 MB에게 도움될 지 궁금하다. 대통령이 오래 의기투합했다니 뭐라 따질 일이 아닐 수 있다. 또 대중에 널리 알려진 진보지식인의 정권 참여로 얻을 정치적 소득을 총명한 참모들이 어련히 알아서 헤아렸을까 싶다.

그러나 정상외교 길에 그를 동반한 것이 '알타이연합' 과 '유라시아평화열차' 구상 등에 진짜 의기투합한 때문이라면 낭패라는 느낌이다. 냉엄한 국제정치, 남북관계 현실을 극복하는 국가 전략과 방책보다 '작가적 상상'에 솔깃한 듯한 모습이 국민에게 어찌 비칠지 걱정스럽다. 자칫 지난 정부처럼 엄중한 현실의 과제는 외면한 채 '뜬구름'을 좇는 꼴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큰 틀'에서 뭘 얻을지

세상은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논란하지만, 대통령은 지식인의 발탁으로 '큰 틀'에서 뭘 얻을지 냉철하게 헤아려야 한다. 가깝게는 박정희 대통령이 철학계의 태두 박종홍을 삼고초려한 전례가 있고, 멀리는 케네디 대통령이 탁월한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의 지혜를 얻은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황석영은 비범한 작가이지만, 도무지 그들에 비할 수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