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소설가 황석영씨의 행동과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MB정부를 "중도실용 정부"로 평가하고, "광주사태 같은 사건은 우리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영국도 있었고 프랑스도 있었고, 때가 되면 다 있는 거더라"고 한 황씨의 말(한국일보 14일자 1면)이 알려지면서 학계와 네티즌 사이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다.
진보측 인사들은 "변절" "코미디"라고 맹비난했고, 보수측에서는 "자기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부터 "우리도 황당하다"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진보 학계의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15일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건 개인적인 선택이고 자유일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MB정부를 중도라고 규정하는 건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행동이 자유로운 소설가라 해도 지난 대선 때 MB를 비난하다가 갑자기 '중도실용'이라고 말하는 건 일종의 코미디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황씨의 '광주' 발언에 대해 "다른 나라에도 시민이나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발포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 당시 신군부는 합법적인 국가권력이 아니었다는 것"이라며 황씨의 역사의식 부재를 꼬집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해 대선 때 독재를 타도해야 한다고 본인이 이야기하고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소설이 잘 안 나와서 그런 것인지, 평균수명이 길어서 노망이 일찍 난 것인지 씁쓸하다"고 말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진보신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기억력이 2초라는 금붕어도 아니고 호모 사피엔스가 얼마 전 자신이 했던 언행을 어떻게 까맣게 잊을 수 있느냐"며 "이 정도의 극적 변신이라면 욕할 가치도 없다"고 비판했다.
보수 학계에서는 황씨를 두둔하는 발언에서부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비판까지 반응이 다양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좌파진보적 성향으로 알려진 황씨가 공식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그 점에 대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아량이 있어야 한다"며 "지식인의 자기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소모적 논쟁으로 끌고 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북한까지 다녀온 황씨가 자신을 중도라고 생각한다는 게 황당하다. 그의 태도 변화는 일종의 훼절이라 생각한다"며 "그동안 (좌파 비판으로) 온갖 고초를 겪은 이문열씨가 현 정권을 그렇게 묘사한다면 수긍하겠지만 지난 정권의 수혜를 입은 황씨가 현 정권을 놓고 '중도실용'을 말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도 성향의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황씨의 행동을 노벨문학상을 염두에 둔 '노림수'로 평가절하했다. 임 교수는 "노벨상을 받으려면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황씨의 행동은 노벨상을 노린 하나의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며 "최근 그의 행동을 보면 컨텍스트(문맥)에 따라 다른 말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황씨의 블로그에서는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황씨에게 실망을 나타내는 네티즌이 다수인 가운데, 일부는 발언의 진위를 확인한 뒤 해명을 들어보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이디 '웃는돼지'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나무를 바라보며 동경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 나무가 말라가고 벌레를 먹은 듯 위태로워 더 바라보기 힘든 것 같은 처지"라고 실망감을 표현했다.
아이디 'sun990112'는 "선생님이 일생 동안 보여주신 행보를 하루아침에 뒤엎었다"며 "작가로서 소신있는 발언이었을지 모르나 독자의 한 사람으로 크게 실망했다"고 썼다.
반면 아이디 'chsory'는 "모두가 입을 다물던 그 엄혹하던 시절에 광주의 참상을 낱낱이 고발한 르포를 쓰고 엄청난 탄압을 온몸으로 받았던 분인데, 변절자 운운 쉽게도 내뱉는 것을 보니 마음이 쓰려온다"며 "황 선생님의 행보에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호소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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