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동갑내기 아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늘 최고 스타의 길을 걸었던 자랑스러운 남편이 후보 선수보다도 못한 6,000만원의 연봉에 사인을 하겠다는 결심을 밝힌 후였다.
"마흔까지 현역으로 뛰는 게 목표였잖아. 목표도 이뤘고 은퇴 후 보장까지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깟 연봉이 뭐 중요해?" 남편은 자신의 자존심을 챙길 겨를도 없이 울먹이는 아내를 다독여야 했다.
항상 최고였던 '람보슈터' 문경은(38). 절친한 동료이자 누구보다도 아끼는 1년 후배 이상민(37ㆍ삼성)이 연봉 2억에 2년 계약을 맺은 13일, 그는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서 '1년 6,000만원'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한 때 최고 3억원의 연봉을 받았던 문경은도 세월의 거센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지난 2주 동안 내 자신이 더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는 문경은의 말처럼, 통화 내내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특유의 유머 역시 여전했다. 극심한 고뇌의 터널을 지나왔음에도 '람보'는 여전히 씩씩했다.
문경은은 "전 단장님과 사무국장님, 지금 사무국장님 등 프런트 직원 대부분이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 온 사이"라며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분들과의 의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남자의 숙명인가보다"라고 했다.
문경은은 이어 "내 자존심만 생각했다면 은퇴를 하거나 다른 팀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문경은은 변함없이 코트에서 땀을 흘리며 2009~10시즌을 맞게 됐다. 내년에 우리 나이로 불혹이 되는 문경은으로서는 마흔까지 선수생활을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이제 문경은의 남은 소망은 단 하나. 선수 생활의 피날레를 우승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SK는 프로농구 최고 포인트가드 주희정(32)을 영입하면서 더욱 탄탄한 전력을 갖췄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터져줄 '람보슈터'의 호쾌한 3점포는 SK가 우승을 차지하기 위한 필수 옵션이다. 삼성 시절 한솥밥을 먹으며 우승을 합작했던 2000~01시즌의 재현도 가능하다.
구단으로부터 은퇴 후 코치직 보장을 받으며 '미래의 SK 감독'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 문경은. 그에게 한 해 연봉 액수 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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