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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열녀의 탄생' 남성 중심의 성적 욕망을 미화 시킨 '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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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열녀의 탄생' 남성 중심의 성적 욕망을 미화 시킨 '열녀'

입력
2009.05.18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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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지음/돌베개 발행ㆍ856쪽ㆍ3만8,000원

열녀(烈女)가 조선시대 유교적, 또는 남성중심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뿐이라는 얘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따지자면 모든 전형(典型)은 이데올로기적일 수밖에 없다.

<열녀의 탄생> 은 전통적 여성상이 허구적 가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그 허구성을 새삼스레 파헤치자는 책은 아니다. 대신 저자는 열녀로 대표되는 전통적 여성상이 조선의 확고한 사회적 가치로 정립되는 '의식화 과정'에 주목했다. 특히 조선시대의 문헌, 그것들이 만들어진 의도와 유통과정, 그 결과로 여성의 의식과 행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 강명관씨는 고전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의 뒷골목 풍경>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같은 흥미로운 대중교양서를 내왔으나, <열녀의 탄생> 은 인문학적 자료집에 가까울 정도로 관련 문헌사료를 집성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열녀 의식화 과정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문헌은 세종 14년에 편찬된 '삼강행실도'이다. '삼강행실도' 열녀편은 명나라의 '고금열녀전' 같은 중국 책들에 나온 사례를 추려 편집한 것인데, 원전이 소개하는 다양한 여성의 미덕 중에서도 유독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여필종부' 사례들만을 주로 뽑아 넣어 조작적 이상형을 유포시켰다. 저자는 "'삼강행실도' 열녀편은 여성의 생명까지 가부장적 권력으로 장악하고자 했던 텍스트라는 점에서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밖에 '삼강행실도'와 함께 조선 전기에 대량으로 제작ㆍ유포된 '소학', 성종 때 펴낸 '내훈', '계녀가' 같은 규방가사나 각종 열녀전 등도 사회적 의식화의 주요 기제가 됐던 것으로 분석했다.

열녀 이데올로기가 여성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만큼 공고해진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는 기간. 책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441명의 열녀가 왜구의 강간과 납치에 저항해 목숨을 버리고, 병자호란 때 청으로 납치됐다 돌아온 '오염된' 여성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가문에서 쫓겨난 것은 조선 건국 후 200년 동안 진행된 열녀 의식화의 결과였다.

그렇게 추적한 저자는 "열녀 담론은, 남성이 복수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반해 여성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한 사람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남성 중심의 성적 욕망을 윤리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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