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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20년/ 전교조 1세대 '쓴소리' "초심 찾고 실사구시 대안으로 참교육 꿈 실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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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20년/ 전교조 1세대 '쓴소리' "초심 찾고 실사구시 대안으로 참교육 꿈 실현을"

입력
2009.05.18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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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정진후)가 28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스무살 청년 전교조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전교조의 입지를 옥죄는 교육 당국의 전방위적 공세, 독선적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 성폭력 사건 은폐의혹 등에 따른 도덕성 추락까지….

성대한 잔치는 언감생심이고, 반성과 성찰에 대한 요구만 가득하다. 잇단 악재 속에 흔들리는 전교조를 두고 전교조 무용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해직과 투쟁으로 얼룩졌던 1990년대를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기억하는 전교조 1세대 활동가들은 현재의 전교조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력 자체가 전교조 투쟁사인 이들에게 성년 전교조의 성취와 위기,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 참교육 운동 확산은 성과

1세대 활동가들은 현재의 위기 논란에 앞서 지난 20년간 전교조의 성과와 교육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해숙(73ㆍ여) 전 전교조 위원장은 무엇보다 교원들이 '노동자성'을 자각하게 된 점을 결실로 꼽았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교사가 교장의 허락 없이 외부에 의견을 낸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교육계에도 분단체제의 영향과 관료주의가 만연해 침묵이 미덕으로 통했다"고 회고했다. 교원단체의 조직화를 통해 교육 분야에 사회적 감시체계를 심어 놓은 것이 권력의 분점화, 교육 시민운동의 태동에 큰 몫을 했다는 설명이다.

'참교육' 운동의 확산은 이들이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자부심이다. 전교조 경기지부장을 지낸 이중현(53) 경기 양평 조현초등 교장은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 시절부터 교과별로 교육 내용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자는 모임들이 속속 생겨났고, 이런 분위기 덕에 교사도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관행처럼 여기던 촌지의 실체를 솔직히 고백하고 학교운영위원회 도입을 꾀하는 등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높인 점도 전교조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 합법화의 딜레마, 조직논리의 득세

초기의 상당한 호응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후 전교조 활동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합법화는 10년 투쟁의 산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조합원 이탈과 학부모 신뢰 감소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전교조 전북지부장 출신인 정찬홍(50) 전북 무주 푸른꿈고 교장은 "어느 순간부터 학생과 학부모가 보이지 않게 됐다"고 고백했다.

전교조가 한때 10만명에 육박하는 조합원 수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전교조의 세례를 받고 교사가 된 '참교육 세대'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인데, 합법화 이후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이념적 테두리에만 갇혀 교육 의제와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지도부와 신세대 조합원 사이의 거리만 멀어졌다는 게 정 교장의 진단이다.

이인규(50)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상임대표는 그 대표적 사례로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투쟁을 지적했다. 그는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지만 비(非) 전교조로 돌아선 경우다. 이 상임대표는 "과연 거리에서 머리띠를 두를 만큼 싸움의 쟁점을 정확히 짚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일이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전교조는 'NEIS 도입은 절대 안 된다'며 뒤늦게 집단 투쟁을 강행했다. 애초에 NEIS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사안에 접근하지 못하고 대중 선동이라는 구태의연한 방법론에만 집착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56)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은 "소통과 관계의 부재"를 언급했다. 그는 "전교조 태동 당시에는 교사가 학생, 학부모의 몫까지 안고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며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층 커진 교육 수요자의 목소리와 요구를 담아내지 못한 점은 전교조가 반성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교원평가제만 해도 이 사안이 수면 위로 떠오른 자체가 수요자 입장에서 어느 정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인데 전교조가 다른 교육 주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성찰과 현실적 대안 제시 필요

이들은 성년 전교조가 여론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 문제로 활동 범위를 좁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찬홍 교장은 "정책은 현실의 반영"이라며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자신들의) 주장들만 되뇌인다면 전교조는 자랑스러운 브랜드가 아닌 낙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진경 전 청와대 비서관도 "성년은 어른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실사구시적인 대안을 전교조가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내부의 관료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인규 상임淪Ⅴ?"위로부터 내려오는 전략과 판단으로는 전교조가 표방하는 공동체주의 교육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며 "투쟁의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명확히 해, 필요하다면 사안별로 입장이 다른 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해숙 전 위원장은 "전교조가 다양한 조합원의 성향을 아우르는 데 미흡했던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속도전 교육에 대응할 수 있는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20년 전 참교육의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 전교조 20년 공과는

전국교직원노조의 전신은 1986년 5월 '교육 민주화 선언'으로 태동한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이다. 전교협이 당시 내세운 '민족ㆍ민주ㆍ인간화 교육' 강령은 이후 전교조의 활동 방향을 규정하는 키워드가 됐다.

89년 5월 28일. 서울 신촌 연세대 도서관 앞에서 역사적인 전교조 창립 선언문이 낭독됐다. 윤영규 초대 위원장은 '겨레의 교육성업을 수임받은 우리 전국의 40만 교직원은 오늘 역사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을 선포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며 전교조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결성식은 정권의 원천봉쇄 탓에 200여명의 인원만 참석, 10분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인고(忍苦)'의 10년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교사도 노동자'라는 주장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교육 당국은 그 해 9월까지 전국 1,524명의 교사를 파면, 해임했고, 42명의 교사들이 불법 노조를 설립한 혐의로 구속됐다. 정부의 계속된 압박에 '일보 후퇴'도 있었다.

93년 정해숙 당시 전교조 위원장은 '선 탈퇴 후 조건부 복직'을 요구하는 김영삼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듬해 3월 1,294명의 교사들이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었다.

합법화 의지를 꺾지 않은 전교조는 이후 '참교육'을 표방한 각종 교육 개혁 운동으로 여론의 지지 기반을 넓혀 갔고, 마침내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오랜 숙원은 현실화됐다. 99년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명실상부한 정식 교원노조로 인정받게 됐다.

합법화 이후 전교조는 열린 교육을 표방하며 교육 현장의 권위주의적 잔재를 일소하는 데 집중했다. 촌지를 근절하고, 두발규제나 체벌 등 학생 인권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교육 민주화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조합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 2003년에는 10만에 가까운 조합원을 거느린 대형 노조로 성장했다. 김진경 초대 정책실장이 참여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에 발탁되는 등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덩치가 커진 조직의 한계는 금세 드러났다. 전교조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교원평가제, 교원 연금 문제 등 주요 현안마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과격 투쟁에 역량을 쏟았다. 또 교육 문제와 무관한 정치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익 집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결정적으로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 출범은 전교조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경쟁'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에 전교조가 합리적인 대안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조합원들까지 등을 돌렸다. 또 최근 잇따라 불거진 도덕성 추문으로 보수 진영의 '전교조 때리기'가 노골화하면서 전교조는 성년식에 최대 위기를 맞는 상황이 됐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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