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 세상/ '스페인 내전' 극좌에서 극우까지…20세기 모든 이념들이 총격전을 벌였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 세상/ '스페인 내전' 극좌에서 극우까지…20세기 모든 이념들이 총격전을 벌였다

입력
2009.05.18 04:54
0 0

스페인 내전/앤터니 비버 지음ㆍ김원중 옮김/교양인 발행ㆍ832쪽ㆍ3만6,000원

카르멘, 플라멩코, 투우,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페인 하면 두서 없이 떠오르는 열정과 관능의 이미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동지 의식마저 느낀다. 1936~39년 온 국토를 이념으로 찢고 황폐화시켰던 스페인 내전은 세계의 전쟁이었다. 종전 70년을 기념해 나온 이 책은 이념에 편향된 저간의 스페인 내전 연구를 뛰어넘는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내전(civil war)이란 관습적 표현은 한국전쟁의 세계적 의미를 남북 '동란'이라는 말로 눙쳤던 지난날의 관행보다 더 무지막지하다. 비록 스페인 땅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전개 양상은 자유민주주의, 파시즘, 공산주의라는 당시 유럽의 이념 지형도를 그대로 이입한 양상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이 전쟁을 가리켜 '이념의 대리전'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특히 스페인 특유의 아나키즘적 전통과 중첩, 전쟁터는 아나키즘의 실험실로서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념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 서로 증오를 쏟아부으며 동족 살해를 자행했던 3년이었다.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향후 세계를 찢어 놓은 이념의 스펙트럼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극사실주의적으로 묘파한 보고서다. 특유의 아나키즘, 마르크스 사회주의, 왕당파와 지주–대기업-가톨릭계급 등으로 쪼개진 각 정파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피의 이념전을 치렀다. 전운이 감돌던 총선 상황에서 좌파는 "우파가 승리하면 곧 내전"이라 했고, 우파는 "좌파가 승리하면 당신의 부인을 남과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 아수라장의 진정한 희생자는 민주주의였다.

이념을 내세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행된 동족 상잔을 보도하기 위해 먼저 외국 특파원들이 스페인을 누볐다. 이들의 기사로 뽑아낸 선정적 제목에 유럽과 세계는 흥분했다. 이념의 스펙트럼에 따라 구미의 지식인들 또한 스페인에 뛰어 들었다. 스페인 내전의 기록에서 세계적 문인ㆍ지식인들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는 이유다. 조지 오웰, 헤밍웨이, 생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등 문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전쟁의 '세계성'을 확인시켰다. 이 전쟁을 최신 무기 실험장으로 이용한 히틀러가 저지른 게르니카 공습의 참상은 피카소의 명화 '게르니카'로 각인됐다.

스페인 전쟁의 몇몇 풍경들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얹혀 유달리 큰 울림을 갖는다. 노동자 반란군과 정부군의 대치 상황에서 노동자 대원이 공격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당신들은 장교들에게 속은 것"이라며 정부 기병대를 설득, 포신을 돌리게 한 일화(139쪽)는 이념의 덧없음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

독일 공군이 스페인의 우파 정부를 위해 게르니카를 폭격하는 동안 히틀러의 심복 괴링은 독일의 적인 공화군측에 무기를 팔아 돈을 챙겼다. 공화 진영의 수호 천사를 자처했던 소련의 행각에 비기자면 더한 것도 아니다. 소련은 공화 진영에 물자를 대주는 대가로 막대한 금괴를 손에 넣었다. 전쟁의 양상을 한층 복잡하게 만든 존재가 프랑코의 용병이다. 전쟁 중 스페인 여성들에게 강간과 학살을 자행했던 그들이 종전 뒤에는 고위 장교로 진급, '명예로운 기독교도'로 추앙 받았다.

잔학한 살상을 가리기 위한 끝모르는 선동과 선전의 아수라장에서 최대의 희생자는 진실이었다. 영국 사학자의 균형잡힌 시각, 공산주의 붕괴 이후 공개된 소련의 비밀문서 등 새 사료 덕에 이 책은 '스페인 전쟁 연구의 결정판'으로 일컬어진다.

장병욱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