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울산 고사동 석유화학단지 SK에너지 울산사업장 내 제 7부두. 지상의 저장 탱크에 가득한 윤활유를 파이프를 통해 인도에서 방금 도착한 2만6,000톤급 선박에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부두 밖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다른 선박들이 부두 접안을 준비하고 있다.
육지의 저장 탱크에 있는 석유 제품을 유조선으로 옮기는 긴 팔 모양의 파이프라인 로딩 암(Loading arm)은 동시에 3개까지 작동한다. 로딩 암 2개로 100만 배럴을 실어 나를 경우 평균 2.6일이 걸리지만, 3개를 쓰면 1.4일로 단축할 수 있다.
이천우 SK에너지 해상출하 2팀장은 "지난해 말부터 수출 물량이 늘어 3월부터 로딩 암 3개를 쓰고 있다"며 "다음달까지 선적 스케줄이 꽉 찼다"고 설명했다. 22척의 배가 동시에 머물 수 있는 울산 공장 8개 부두에는 하루 평균 40만 배럴 꼴로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SK에너지는 올해 1분기 3,278만5,000만 배럴의 석유 제품을 수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3%나 늘었다. 1분기 석유 사업 매출액 5조8,076억원 중 절반 이상인 2조9,227억원을 수출로 얻었다.
SK에너지는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에 집중했던 수출 루트를 지난해 말부터 미국, 유럽, 호주,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넓히고 있다. 최근 브라질에 초저유황 경유 30만 배럴을 처음 수출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100만 배럴 이상의 석유 제품을 운반할 수 있도록 부두 시설을 넓혔다. 100만 배럴은 우리나라가 하루에 쓰는 석유 제품 내수 소비량과 맞먹는 분량이다.
전 세계 유화업계는 지금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SK에너지를 비롯해 국내 유화 업계는 중국 수출이 호조를 띠면서 올 1분기 예상 밖의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인도(릴라이언스 58만 배럴), 중국(CNOOC 24만 배럴), 베트남(페트로 베트남 14만8,000 배럴) 등 경쟁국들이 정제 시설을 늘렸거나 증설을 추진 중이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페트로라비그가 지난달 석유화학설비 가동에 들어갔고 이란, 쿠웨이트, 카타르 등도 지난해 말부터 대규모 설비 가동을 준비해 왔다. 전 세계에서 수 백만 배럴의 새 물량이 쏟아져 나올 예정인 만큼 경쟁은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SK에너지는 경쟁사들의 물량 공세에 철저한 품질 관리로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환경 규제가 까다로운 유럽은 초저유황 경유를, 아프리카는 휘발성이 낮은 휘발유를 요구하는 등 나라마다 요구 사항이 제 각각이지만 첨단 정제 기술로 이를 척척 맞춰가겠다는 것이다.
특히 '제3 고도화설비'가 그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원유 정제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석유 제품 중 40% 가량은 가격이 싸고 유황이 많이 든 벙커C유 등 중질유이다.
중질유는 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고 가격도 생산원가에 못 미쳐 팔면 팔수록 손해다. 그런데 고도화설비는 이런 중질유를 휘발유, 등유, 경유 등 고부가가치의 청정 경질유로 바꿔주는 첨단 장치. 그래서 '지상 유전'이라 불린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고도화설비 덕에 3월 원유 수입 대비 석유 제품 수출 비중이 57.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조원이 투입돼 만들어 진 제3고도화시설은 지난해 6월 가동에 들어가 하루 7만 배럴의 제품 전량을 수출하고 있다. 김동호 생산1팀장은 "기존 고도화 시설보다 탈황 설비를 강화해 황이 거의 없는 친환경 휘발유와 경유를 만들고 있다"며 "이 때문에 환경 규제가 까다로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수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울산=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