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계 고교(옛 실업고)들은 긴 어둠의 터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70~80년대 우수 인재들이 몰려 '기술 입국'의 든든한 뒷받침이 됐던 시절은 까마득한 추억으로 다가올 뿐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원을 채우지 못해 인문계 고교로 전환한 학교가 속출했고, 그나마 남아있는 전문계고도 '전문 기능인 양성'이라는 취지는 실종된 채 취업 보다 대학 진학 비중이 되레 높아지고 있다. 교육계에서 '실업교육의 위기'를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여상은 달랐다. 이 학교는 정원에 미달하거나, 대학 진학률이 취업률을 앞선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 신입생의 중학교 내신 합격선(상위 20%)도 서울 지역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로 28번째를 맞은 한국교육자대상 대상의 주인공이 된 한상국(72) 교장의 열정이 만들어 낸 소중한 결실이다.
14일 서울 관악구 청룡동 서울여상 본관 3층에 자리한'연습기업 실습실'. 이 학교 학생들의 꿈이 영그는 '작은 기업'이다. 교실 3개를 합친 공간에서 학생들은 영업은 물론 재무, 구매, 생산, 은행업무까지 기업활동의 전 과정을 직접 배우고 실습한다.
일찌감치 특성화를 택한 그의 '선견'(先見)은 빛을 발하고 있다. 전국 30여개 학교가 특성화의 모범사례로 서울여상을 방문해 워크숍을 열고 운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갔을 정도다.
한 교장은 91년 무악재에서 교사(校舍)를 이전하면서 제2의 도약을 위한 토대로 실무교육 강화를 내걸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협소한 실습실과 그저 그런 커리큘럼으로는 다가오는 지식기반 사회에 전문인력을 키우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를 옮긴 건 당시 성적은 우수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관악구에 많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지요."
한 발 앞서'변화'를 받아들인 그의 결단은 고비 때마다 제 구실을 톡톡히 했다. 96년 인터넷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서울여상은 일찌감치 학교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각종 자료를 외부에 공개했다.
홈페이지 경진대회, 정보화 축전 등 각종 정보화 교육을 주도하며 사무업무 능력에 치우쳐 있던 상업학교의 역할을 일신하는데 앞장섰다. 학교 홈페이지 누적 방문자 수는 전문계고로는 보기 드물게 340만여명을 헤아린다.
정보화로 기반을 다진 그는'국제통상 및 금융'에 승부수를 걸었다. 2004년 이 분야 특성화고로 선정된 이후 서울여상은 금융과 e비즈니스 등 통상이 결합한 산학협력의 본보기가 됐다.
이 학교에서 재학 중 증권투자상담사(CSIC), 국제무역사 등의 전문 자격증을 딴 학생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한 교장은 "'서울여상'이란 옛 교명(校名)을 고수한 것도 앞선 교육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전문계 고교들이 위기 타개 방안의 하나로 ○○정보고, ××인터넷고 등 교명 변경에 열을 올렸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전문고로서의 정체성과 실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서울여상의 진학대비 취업자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3대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 교장의 소신은 뚜렷하다. "공교육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학생의 눈높이에서 미래를 바라보면 변화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경기중ㆍ고교와 미국 핸오버대를 졸업한 한 교장은 69년 서울 문영여중 교사로 교직과 연을 맺은 뒤 74년부터 서울여상 교장을 맡고 있다. 구한 말 참정대신을 지낸 한규설의 증손자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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