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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내 인생의 만화,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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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내 인생의 만화, 나나

입력
2009.05.18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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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사랑보다 굳다, 섹스라는 매개 없이도 타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감정이므로. 연인은 헤어져도 친구는 헤어지지 않는다.' 철없던 시절, 난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서른을 넘기면서 알게 됐다. 이별은 연인끼리만 하는 게 아니었다. 친구끼리도 헤어진다. 사소한 실수, 시간 앞에 점점 벌어지는 가치관과 생활방식과 관심사의 간극, 달라지는 일터, 결혼, 혹은 그저 숨 쉴 틈 없는 일상, 같은 이유들 때문에.

내겐 20년 된 친구가 있다. 20년 동안 모든 순간이 친구인 건 아니었다. 우린 각자 너무 바빴고, 많이 달랐고, 점점 더 달라졌다. 연락이 뜸해지는 게 아쉽고 허망하면서도 난 먼저 손을 뻗지는 못했다. 그 친구가 생각날 때면 야자와 아이의 만화 <나나> 를 꺼내 읽었다.

꿈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끝없이 외로워하는 열정적인 로커 오사키 나나와 따뜻하고 세심하지만 자신감이 없는 소녀 고마츠 나나. 이름을 빼면 닮은 것 하나 없는 둘은 우연히 친구가 되고, 기념으로 딸기무늬 컵을 사지만, 그 컵은 깨지고, 둘은 갈 길이 갈리면서 멀어진다.

이 만화를 소장본으로 구입하려고 주문하다가 알았다. 그 친구에게 <나나> 를 선물했었다. 그런데 선물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둘 중 누가 오사키 나나고 누가 고마츠 나나냐를 놓고 티격태격했다는 사실조차. 그날 깨달았다. 일이 안 풀리거나 돈이 없어도 답답할지언정 가슴이 미어지진 않았다. 한때 마음을 열었던 사람과 멀어지는 것만큼 아픈 일은 없었다.

그리고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그 친구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여전히 많은 게 다르지만, 나는 이번에도 먼저 말을 걸지 못했지만, 그 친구는 결혼할 사람을 내게 제일 먼저 보여주었고, 난 그 친구의 식장에서 축의금을 받는다. 그 사실이 그저 기쁘고 고맙다. <나나> 는 '친구'라는 말을 떠올릴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야기이며,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영원히 스무 살 언저리에 남겨 놓는 만화이자, 내 인생의 만화이기도 하다.

윤이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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