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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하얀앵두' 잇따라 올리는 극작가 배삼식 "덧없음·사라짐의 의미 되새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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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하얀앵두' 잇따라 올리는 극작가 배삼식 "덧없음·사라짐의 의미 되새기고 싶었어요"

입력
2009.05.18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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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목록에 대중 스타의 이름이 걸린 작품에 관객이 몰리는 한국 연극계 현실에서, 극작가 배삼식(39)씨는 이름만으로 관객의 신뢰를 이끌어 내는 몇 안 되는 젊은 창작자 중 한 사람이다.

1998년 '햐안 동그라미 이야기'로 데뷔한 그는 '허삼관 매혈기'(2004) '벽속의 요정'(2005) '열하일기만보'(2007) '은세계'(2008) 등에 극작 또는 각색자로 참여해 왔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맛깔스러운 대사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그런 그가 5, 6월 잇따라 신작을 무대에 올린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각색한 '템페스트'(20일~6월 6일ㆍ예술의전당 토월극장)와 두산아트센터 과학연극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햐얀앵두'(6월 16일~7월 5일ㆍ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다.

언뜻 서로 동떨어져 보이는 두 편이지만 '덧없음'이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있다. 만사에 초탈한 듯 느릿한 말투를 이어가는 그의 일상처럼.

'템페스트'는 마술, 요정 등 환상적인 요소가 가득한 낭만 희극이다. 나폴리 왕과 짠 동생 안토니오에게 배신 당하고 외딴섬으로 추방된 영주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딸과 나폴리 왕 아들의 사랑을 계기로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한 이들을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배씨가 각색한 '템페스트(연출 손진책)는 "절망보다 더 깊은 절망이 담긴 이야기"다. "그냥 보면 단순하고 유쾌한 희곡 같지만 참 지독한 거짓말일지도 몰라요. 젊은 날 인간의 지독하고 모진 모습을 들여다봤던 셰익스피어가 말년에 오죽하면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꾸며냈겠어요. 아마 동화 속에서라도 인간을 용서하고 세계와 화해하고 싶었겠지요."

이 작품을 현대로 옮겨 요양원에 들어온 노숙자들이 '템페스트' 공연을 준비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각색한 그는 "덧없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이라는 거짓말을 놓을 수 없는 인간의 애달픈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험을 살려 2주 만에 쓴 '하얀앵두'(연출 김동현)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심하게 앓으면서 죽음을 생각했다"는 그는 사라짐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했다. 고생대 지층이 발견되는 강원도 영월을 배경으로 작가와 지질학자, 배우 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또는 잊고 싶은 기억을 이야기한다.

"거짓말 같겠지만 할아버지댁 마당에 열렸던 하얀색 앵두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무 그루터기까지 말끔히 사라져버린 신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없는 하얀앵두가 제 기억 속에는 아직 남아 있듯 사람들이 수다를 떠는 행위가 다른 이의 기억 속에라도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남기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쩌면 순간, 영원으로 구분되는 인간의 시간이란 것도 새로운 눈길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하얀앵두'를 언급할 것도 없이 "20대를 아무 대책 없이 보낸" 그에게 시간의 흐름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차별된다. 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과정에 입학했다.

"직선적인 시간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간 개념을 갖고 있어서인지 발단, 전개, 절정, 결말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구성을 잘 못 하겠더군요. 그래서 교수님에게 타박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작가라는 확신이 없었다"는 그는 작품 한 편을 내놓을 때마다 관심을 받는 지금에 감사하면서도 두렵다고 했다.

그에게 연극의 매혹은 "수많은 말들이 지나가고 난 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더 이상 말로서 할 수 없는 순간이 만들어지는 글을 쓸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하얀앵두'를 시작으로 관념이나 아이디어 수준에서 벗어나 좀 더 미시적으로 일상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싶네요. 오늘 전신주 앞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그런 작업 말이죠." '템페스트' 공연 문의 (02)580-1300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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