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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학문연구의 담 허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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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학문연구의 담 허물기

입력
2009.05.18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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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다녀보면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울타리나 담이 많이 있음을 느낀다. 덕수궁 돌담부터 제주도의 소담한 돌담까지, 더러는 담의 본래 역할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반대로 외국의 집과 건물엔 담이나 울타리가 없어 경계가 어딘지 몰라 당황한 적도 있다.

소통과 상생 막는 장벽

본래 담은 원시시절부터 사유재산과 영역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담은 단순히 나와 너를 구분하는 원시적 역할을 넘어 나와 자연을 경계 짓되 자연 속에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준다. 또한 밖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단절되지 않고 담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교감한다. 나지막한 담장을 통해 자연과 동화되어 자기의 세계를 새로이 창조했다. 다행히 요즘 도시 곳곳에서 높은 담이 철거되고 예쁜 꽃이 울타리를 대신하는 것을 볼 수 있어 흐뭇하다.

물리적 담은 이렇게 점차 허물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흉물스러운 담이 남아 있다. 이념적인 담, 혈연ㆍ지연ㆍ 학연으로 나뉜 담, 정치적 계파의 담 등 마음속에 수많은 담을 쌓고 편견과 궤변으로 더 높이고 있다. 학자 또는 연구자 사회에도 학문 간의 높은 담으로 소통이 부재하고, 분야 이기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크게는 인문사회분야와 이공분야 사이에 높은 담이 있고, 세부 학문분야 간에도 담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담은 바깥과의 차단, 내 것 지키기를 위한 장벽일 뿐이다. 특히 세분화를 통한 전문성 강화를 내세운 학문 간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버드 대의 석학 에드워드 윌슨은 심리학을 포함한 일부 사회분야는 앞으로 생물학 등 자연과학에 흡수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 많은 시인들이 노래했던 '사랑의 감정'도 뇌의 화학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인터넷도 IT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미디어, 교육, 심리, 의학, 문학 분야와 융합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미래에 정말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인문사회학자와 우뇌가 발달한 과학자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는 단순히 학문 당사자들의 변화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과제이다. 또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리고 갈등을 겪을 것이 분명하기에 국가가 리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하여 다음달 한국연구재단으로 새로 출발한다. 세 기관은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학문수준이 압축적으로 성장하여 세계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과학재단은 과학기술 분야의 비약적 성장에, 학술진흥재단은 인문사회분야 및 기초과학연구에 성공적으로 공헌해왔다.

재단 출범을 앞두고 과학기술인들은 인문사회분야의 득세로 정부의 과학기술 지원의지가 희석될까 걱정한다. 반대로 인문사회인들은 새 재단의 모델이 미국의 과학재단(NSF) 이어서 인문사회분야 지원이 줄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지금껏 높이 쌓은 담이 허물어질까 두렵고, 상대의 담만 무너지기를 바라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 한국연구재단 > 출범에 기대

지금이야말로 높은 장벽을 허물고 우리의 전통 담처럼 서로 넘나들고 교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할 때다. 재단 역시 두 분야의 상생과 통섭을 이끄는 발전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10년 후 연구자들이 달라져 있을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철제 울타리에 철조망까지 올려져 있었는데 언젠가 그것을 걷어내고 나무를 심었다. 봄이 되니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뭔가 더 가진 것 같은 풍요로움을 느낀다. 도둑이 더 늘었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정순영 서강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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