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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장애인 없는 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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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장애인 없는 두바이'

입력
2009.05.18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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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다가 안에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에 다녀온 두바이의 사막모래였습니다. 두바이는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별천지였습니다. 불과 10여년 만에 엄청난 발전을 이룬 두바이. 과거 사막의 한적한 어촌이었고 그저 물고기나 잡아먹고 살던 베드윈 족들의 천막은 다 사라지고 세계 제일의 빌딩인 버즈 두바이와 수많은 고층 건물이 도심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 건축 경연장이었습니다. 버즈 두바이는 우리나라 기업이 짓고 있어 더욱 감회가 새롭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석유산업이 전부였던 두바이는 머지않아 고갈될 석유자원이 아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데 힘을 쏟아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두바이의 전체 수입 가운데 석유수입은 7%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 저는 두바이를 보는 눈이 또 달랐습니다. 밤늦은 시각에 호텔을 나와 산책을 하려는데 놀랍게도 그토록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국가에서 차도와 인도 사이를 내려가고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길거리를 오가는 장애인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선진국을 가면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장애인이 우리에게 문화의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잘 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그만치 사회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원하는 곳 어디든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화려한 도시 두바이에서 휠체어를 타거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아라비아를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장애가 여전히 부끄러운 것이고, 심지어는 천벌을 받은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상상해보면 낙타나 말을 타고 다녀야만 하는 척박한 사막 환경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안 봐도 뻔합니다. 그러한 열악한 조건의 사회에서 장애인이야말로 사회에 짐이 되고 말살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이미 국민소득이 우리를 앞서고 있으며, 인구의 80%가 외국인이고 자신들은 고급스러운 고부가가치 사업에만 종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검은 부르카를 쓰고 눈만 내놓고 다니면서도 명품백을 어깨에 맨 두바이 여성들을 봤을 때, 두바이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권 발전을 굳이 단계별로 나누면 여성해방이 가장 먼저 오고, 그것이 완성될 무렵 장애인 인권이 개선되며, 그 다음 비로소 성적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장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두바이는 겉 모습은 선진국이고 화려하지만 장애인들은 장애인인 내가 보기에 문밖으로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수준입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한 사회와 국가의 경제적 풍요가 진정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부유하게 하려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는 짧은 시간에 세계 최빈국에서 10위 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 우리도 두바이와 같은 나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데 부족한 점은 없는지, 우리가 돌보지 않아 소외된 장애인은 없는지 주위를 잘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견디기 힘들고 외로워지기 마련입니다. 두바이 여행에서 다시 확인한 현실이었습니다.

고정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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