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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때 이른 '위기 피로감'은 더 큰 위기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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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때 이른 '위기 피로감'은 더 큰 위기 부른다

입력
2009.05.18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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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시장 안정과 일부 경기지표 개선에서 비롯된 경기회복 기대가 주요 선진국의 경기사이클이 변곡점을 통과했다는 판단에 힘입어 탄력을 받는 조짐이다. 여기에 세계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던 해외 명망가와 석학들까지 가세해 내년이면 봄 날을 맞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리 정책당국은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이 같은 기류에 편승해 '위기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부실 수술'을 피해가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위기를 몰고 온 거품의 본질을 망각한 처사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우리경제의 위상과 체질까지 내다보며 조금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엊그제 발표된 4월 취업자수는 지난 해보다 18만8,000명 감소했지만 8개월 만에 급락세는 일단 멈췄다.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던 실업자도 90만 명 대 초반에 머물렀다. 그러나 추경 등 재정지출로 한시적 일자리가 늘어난 덕분이어서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지표가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좋아진 것은 아니다"고 일깨우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리 경제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고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한 이유다.

반면 최근 G10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주관한 장 클로드 트리세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세계 경제가 변곡점에 거의 도달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대표적 비관론자들도 "세계 경기의 자유낙하는 끝났다"고 돌아섰다.

이와 달리 우리 정책당국이 신중함을 견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제 구조조정의 초입에 이른 마당에 재정과 감세 등 실탄을 거의 소진한 상황이어서 경제가 반등하더라도 속도는 더딜 수 밖에 없다. 또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후폭풍을 견뎌온 기업의 여유자금과 가계저축도 바닥에 이른 형편이다. 이 때문에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한 우리 경제가 내년에 플러스로 돌아서더라도 그 힘이 미약해 2010년 경제규모는 2008년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섣부른 바닥론에 현혹된 구조조정 대상기업들 사이에 "조금만 버티면 수술을 피할 수 있다"는 위기 불감증이 퍼지고 있다. 비용절감과 혁신 요구에 몰렸던 직원들도 "이젠 좀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위기 피로감을 호소한다고 한다. 참으로 위험한 태도다.

어제만 해도 미국의 소비지표 급락과 중국의 수출급감 소식에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경제위기를 부른 병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 아직은 모두가 허리끈을 조일 때이지. 피로감 운운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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