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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코엑스 전시전문기획가 김광진·이계성·김영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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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코엑스 전시전문기획가 김광진·이계성·김영란씨

입력
2009.05.18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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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2009 한국국제유통산업전'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대서양홀. 수백개의 전시 부스 사이를 부산하게 뛰는 이들이 있다. 얼굴은 온통 땀 범벅이다. 전시품을 보는 게 아니라 묻기 바쁘다. "전시장 시설은 이상이 없지요?" "애로사항은 없으세요?" 꼼꼼한 필기도 잊지 않는다. 이들이 바로 전시회의 꽃이란다.

고상한 용어로 하면 '전시전문기획가'(CEMㆍCertified in Exhibition Management)다. 국내 최대 전시컨벤션업체 코엑스엔 국내 전시회 역사의 산증인이 있다고 한다. 3총사로 불리는 김광진(45) 팀장, 이계성(37) 차장, 김영란(32) 과장을 만났다. 흔치 않은 직업, 이들은 어떻게 전시와 연을 맺었을까.

전시기획전문가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굳이 요약하면, 외부로부터 의뢰를 받거나 자체적으로 새로운 전시 아이템을 개발해 전시회를 기획하고 운영ㆍ관리하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대규모다 보니 업무 분장은 필수다. 예컨대 김 팀장은 전시회 기획부터 운영까지의 업무 총괄, 이 차장은 기존 전시회의 운영 및 관리, 김 과장은 새로운 전시회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전시전문기획가란 동일 범주지만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른 셈이다.

생소한 직업이기도 하다. 19년 경력의 김 팀장은 "처음 코엑스에 입사한 1990년만 해도 전시산업은 첫 걸음을 뗀 단계였다"며 "사실 아무도 모르는 직업이었다"고 회고했다. 9년차인 이 차장의 고민도 비슷하다. 그는 "전시가 대중화한 요즘에도 주위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기 일쑤"라며 "그만큼 직업 희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렇다 보니 직업과 연을 맺은 것도 우연의 연속이었다. 우선 김 팀장은 친구 따라 강남 간 케이스. 88년 개발이 안돼 허허벌판이었던 삼성동 일대에 들어선 거대한 코엑스 건물을 본 순간 김 팀장은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마침 대학의 같은 과 친구가 코엑스에 입사했는데 친구에게 입사 정보를 알아내 바로 지원했다. 그는 " 당시 20대였던 저에게 코엑스는 새로운 세계 같았고, 꼭 들어가고 싶어서 무작정 이력서를 썼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원래 꿈이 '상사 맨' 이었다. 007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전세계를 누비는 상사 맨이 부러워 무조건 코엑스 인턴에 지원했고, 6개월여간의 인턴을 마치고 당당히 코엑스 공채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김 과장은 대학원을 다니다 전시전문기획가라는 직업을 우연히 접해 이 길로 들어섰다. 김 과장은 단순히 "멋있다"고 생각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사 지원을 했는데 덜컥 붙어 7년째 같은 길을 걸어오고 있다고 했다.

우연한 입사 동기와는 달리 이들이 걸어온 길은 멀고도 험했다. 화려한 건 겉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몇 년 전 TV드라마를 통해 전시전문기획가들의 영역이 다뤄졌지만 이는 수박겉핥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보기 좋은 모습만 그려졌다고 했다.

김 팀장은 "90년에는 국내에 전시회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며 "전시회 기획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당시 유망한 업종의 업체들을 찾아가 전시회를 열도록 권유하고 다녔다"고 했다. IMF때는 더했다. 그는 "지금도 경제상황이 어렵지만 10년 전엔 전시산업이 최대 위기를 겪었다"며 "90년 들어 매년 전시회도 늘고 참가업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97년 하반기 이후 반토막으로 떨어지고, 수많은 전시회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 느낀 충격과 허탈감은 두고두고 남아있다.

숱하게 싸우는 게 이들의 일이기도 하다. 이 차장은 "전시회를 진행하다 보면 준비부터 폐막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데, 단 며칠간의 전시회를 오픈 하는 데도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의 시간을 쏟는다"고 했다. 김 과장은 "항상 새로운 전시회를 기획하고 다른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만큼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전시회를 유치한 뒤의 기쁨이 모든 걸 보상해주니 지금껏 버티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들처럼 전시전문기획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팀장은 "대학생들이 전시전문기획가를 꿈꾼다면 우선 코엑스와 같은 전시컨벤션업체에 취업한 후 CEM프로그램이라는 전시 전문가 재교육 프로그램을 받는 것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CEM은 2002년 코엑스가 미국전시협회와 독점계약을 맺으면서 도입된 프로그램으로 전시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이 과정은 총 9개 과목을 3년 내에 수강해 시험을 통과해야만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프로그램은 자격조건이 실무 경험 3년 이상이다. 전세계적으로 CEM 자격자는 600여명, 국내에서는 30여명 밖에 안될 정도로 희소성이 높다.

이들은 전시전문기획가가 희소성은 높지만 경쟁은 심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전시산업이 경기 영향에 가장 민감한 산업이기 때문이란다. 경기가 좋을 때면 전시회 참여 업체나 관람객들이 많겠지만 하락세일 때는 기존 전시회조차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차장은 "전시 분야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며 "요즘 전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전시 산업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 팀장은 국내 전시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의 전시산업 성장세가 무섭지만 한국은 그 노하우가 만만치 않다"며 "한국의 정보기술(IT)산업, 자동차, 서비스 산업 수준이 높아 전시 산업 발전 가능성도 높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더 많은 인재들이 함께 하길 소망하고 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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